공장은 삭막하다는 형용사와 거의 자동적으로 연결된다. 심미적 고려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 건축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공장은 뒤늦게 미적으로 재발견되기도 한다. 전혀 꾸미지 않은 공간이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날것의 풍경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이런 아름다움에 주목한 건축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수명 다한 건물과 설비를 재활용하거나, 생산 현장의 기억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통해 도심의 공장을 문화 시설로 탈바꿈시킨다. 도심의 소규모 공장이나 철공소를 카페·상점으로 바꾸는 경우에 이어 최근에는 대규모 공장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각종 설비를 일부러 노출시켜 산업 시설의 느낌을 내는 건축·인테리어 스타일이 ‘인더스트리얼(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지만 진짜 공장의 박력에는 미치기 어려운 것이다.
인천 가좌동 코스모40은 원래 코스모화학 공장 40동(棟)이었다. 건축가 양수인이 설계를 맡아 2018년 복합 문화시설로 조성된 데 이어 최근 건축가 임승모가 내부를 새로 단장했다. 대부분 건축물이 ‘완공’되면 끝이다. 실내는 그때그때 필요에 맞춰 꾸미다 보면 외관과 동떨어진 디자인이 나오기도 한다. 코스모40처럼 새로운 건축가가 디자인의 바통을 이어받아 내부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임승모는 이곳에 강렬한 색깔의 폴리(folly)를 도입했다. 폴리는 원래 장식용 구조물을 뜻하지만 코스모40 내부에 설치한 폴리들은 계단, 산책로, 벤치처럼 기능을 부여했다. 임승모는 “공장으로 지어진 곳이다 보니 실내가 크게 확장된 느낌”이라면서 “인공위성이 뜬 우주처럼 곳곳에 폴리를 흩뿌려서 공간을 즐겁고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부산 망미동 고려제강 부지에 건축가 최욱이 설계한 문화시설에는 지난달 현대자동차의 디자인 전시공간인 현대모터스튜디오와 금난새 뮤직센터가 들어갔다. 이 건물은 신축이면서도 옛 고려제강 공장과 연속성을 유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우선 공장에서 만들던 와이어(wire)를 디자인의 열쇠로 삼았다. 지붕 위로 가지런하게 지지대를 세우고 여기에 연결된 와이어가 건물을 들어올리듯 지탱한다. 지지대가 줄지어 선 모습은 바닷가에 크레인이 솟은 부산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바로 옆엔 옛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시설 F1963(설계 조병수)이 있다. 최욱은 “1층을 비우고 건물을 띄워서 빈 공간이 F1963의 마당처럼 연결되도록 했다”면서 “새 건물의 파사드(앞면)에는 물성이 강하지 않고 중성적 소재인 폴리카보네이트를 썼다”고 말했다. 시각적 측면은 물론 기존 건물과의 관계를 설정할 때도 조화를 고려했다는 의미다.
서울 영등포 대선제분 공장도 내년 여름 완공을 목표로 상업·문화공간으로 조성 중이다. 정미·제분공장, 창고, 식당, 사무동 등 크고 작은 건물 23채가 부지에 모여 있는 이 건물은 공장 건물의 매력을 잘 보여준다.
우선 공장은 도심에 드문 대규모 공간이다. 대선제분 대형 창고는 폭 15m, 길이는 100m에 달하는 공간이 기둥 없이 이어진다. 이를 위해 설치된 트러스(부재를 삼각형으로 엮어서 지붕을 받치는 구조물)가 천장에서 반복되면서 리드미컬한 조형미를 연출한다.
저마다 생산 품목에 특화된 설비들은 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뒤에도 시선을 끈다. 대선제분의 경우 원료와 완제품을 저장하던 높이 30m의 사일로(저장탑)와 6층짜리 제분공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김경도는 “사일로와 제분공장은 향후 구체적 디자인 계획안이 마련될 것”이라면서 “보전하는 쪽으로 방향은 정해졌다”고 했다. 채민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