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타면 포항서 서울까지 두 시간 반에 끊는 시대에 먼 사투리가 의미있나 싶다가도 실컷 사투리 씨다가 어디서 전화 오면 서울말로 확 바까가 말하는 기 현실 아이가. 와, 좀 부끄럽나, 촌스럽게 빌까봐 걱정이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경상도 사투리 버전인 ‘애린 왕자’의 역자 서문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경상도 사투리 버전인 ‘애린 왕자’(이팝)의 한 구절입니다. 원래는 ‘어린왕자’를 각국의 독특한 언어로 출간하는 독일 출판사 틴텐파스에서 지난해 6월 낸 책입니다. 처음엔 유럽 거주 한인들과 한국어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고, 입소문이 나자 국내 독자들이 이 책을 구하기 위해 독일 아마존 ‘직구’까지 감행하곤 했죠.
“오후 4시에 니가 온다카믄 나는 3시부터 행복할끼라. 시간이 가믄 갈수록 나는 더 행복하긋제. 4시가 되모 나는 하마, 안달이 나가 안절부절 몬 하겠제.”
“내 비밀은 이기다. 아주 간단테이. 맘으로 비야 잘 빈다카는 거. 중요한 기는 눈에 비지 않는다카이.”
‘어린 왕자’의 명구를 경상도 사투리로 읽는 맛에 푹 빠진 독자들 성화에 마침내 국내판이 나온 건 지난 12월, 번역자 최현애(38)씨가 차린 1인출판사에서 냈는데 벌써 4쇄를 찍었답니다. 전라도 사투리 버전도 곧 나온다고 하네요. 포항 출신으로 최근까지 싱가포르에서 활동했던 최씨는 “독일 출판사에 출간을 먼저 제안했다. 사투리를 쓸 때면 어쩐지 주눅이 들었는데 이 작업을 통해 사투리가 열등한 언어가 아니라 지역 문화를 담은 그릇이라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번역하며 가장 아름답다 느낀 구절은 “사막이 아름답은 기는, 어딘가 응굴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데이...”라는 어린왕자의 말. ‘응굴’은 ‘우물’1 뜻이라고 하네요.
주독자는 20~30대. 책 낭독 파일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길래 소리내 읽어 보았는데 ‘갱상도 말’이 모어(母語)인 제게도 의미를 온전히 파악하고 억양을 살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경북 사투리로 번역된 책이라 경남 출신이 이해하기엔 한계가 있는 걸까요? 그렇지만 신기하게도 원작의 서정성만은 그대로 전해져 왔습니다. 어린 왕자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 다다르자 마음이 ‘애리기’ 시작했거든요.
“아! 친구야, 니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데이”라고 말하는 책의 화자(話者)에게 어린 왕자는 말합니다.
“아제가 밤하늘을 바라보모, 내가 그 별 중에 어느 별에 살고 있고, 내가 그 별들 중에 어느 별에서 웃고 있을 테이까, 아제는 별이 마카 웃고 있는 기로 보일 기야. 아제는 웃을 줄 아는 별을 가지는 기지!”
어떤 언어로 옮겨지든 보편적 감동을 안기는 것이 고전의 힘일 겁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