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미우라 시온 지음|권남희 옮김|은행나무|340쪽|1만5000원

마호로 시(市)는 도쿄 도(都)의 변두리에 있다. 도 남서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주택가이자 환락가이지만, 도쿄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마호로의 행정구역이 도쿄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랄 정도로 외곽이다. 밤이면 술과 여자, 마약을 사려는 사람들이 역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국경 지대처럼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하고 혼란한 기운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토박이 다다 게이스케는 마호로 역 앞에서 ‘다다 심부름집’을 운영하는 별 볼일 없는 남자다. 트럭 한 대에 의지해 고양이 맡아주기, 정원 청소, 이삿짐 나르기 등 온갖 잡다한 의뢰를 맡아 생계를 꾸려나가며 사무실을 집으로도 사용하는 이혼남이다. 겨울날 다다는 치와와를 돌보는 심부름을 하다 우연히 고교 동창 교텐 하루히코와 마주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론 처음 보는 그는 청바지에 괴상한 코트를 걸쳤고, 맨발에 갈색 샌들을 신고 있다. 두 살쯤 된 자식은 만나보지 못했고 부모는 집을 팔고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재워달라”는 요청을 시작으로 교텐이 다다의 가게에 얹혀살게 되면서 두 남자의 어색한 동거는 시작된다.

다다가 교텐의 더부살이를 용인한 이유는 마음의 빚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대화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 잘렸다가 봉합된 교텐의 새끼손가락에 다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다.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괴짜였던 교텐을 다다는 별 이유 없이 싫어했다. 기술 연습 시간에 친구들이 교텐에게 장난을 걸 때 다다는 몰래 의자를 빼놨고, 교텐은 그 의자에 걸려 넘어지면서 예상치 못하게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소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에서 두 남자는 사무실에 동거하면서 트럭을 타고 각종 사건·사고를 해결해나간다. 2006년 나오키상을 받은 소설은 2011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진은 일본 배우 에이타(오른쪽)와 마츠다 류헤이가 주연을 맡은 영화 속 한 장면. /애스믹 에이스

두 남자는 트럭 운전석과 동승자석에 나란히 앉아 사계절 동안 각종 사건을 통과해나간다. 버림받은 치와와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고, 스토커에게 시달리는 윤락업소 여성을 살펴주고,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친구를 둔 여고생을 보호한다. 속엣말은 하지 않으면서 농담은 예사로 뱉는 여느 남자들처럼 둘은 끊임없이 아웅다웅한다. 경쾌하고 잡다한 대화 속에서 언뜻언뜻 내면의 상처가 스며 나온다. 예컨대 고교 시절 교텐이 과묵했던 이유는 부모의 학대 때문으로, 악몽에 시달리며 이따금 묘지를 찾는 다다는 아기를 하늘로 떠나보내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두 남자는 상대가 지닌 상처의 전모를 굳이 알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심부름을 좌충우돌 해결하는 와중에 상처는 조금씩 아문다. 엄마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마약 운반책이 되어버린 초등학생을 범죄에서 구출하며 다다는 충고한다. 아무리 기대해도 너희 엄마는 네가 바라는 모습으로 사랑해주시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지만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기회는 있어. 네가 받지 못했던 걸 네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새롭게 누군가한테 줄 수가 있다고.” 다다의 위로는 의뢰인을 넘어 교텐에게 닿는다.

소설은 ‘상처는 언젠간 회복한다’란 평범한 교훈을 두 남자가 겪는 따뜻한 에피소드들로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아이가 죽고 아내와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끔찍한 기억을 털어놓는 다다에게 교텐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한다. “어때? 아물었지? 새끼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조금 차갑긴 하지만, 문질러주면 온기가 돌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순 없어도 회복할 순 있다는 말이야.” 교텐이 다다에게 돌려주는 위로는 곧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는 당부이기도 하다.

2006년 나오키상 수상 작품. 상처투성이 과거와 불투명한 현재를 사는 두 남자의 행복과 구원의 이야기에 독자들이 공감하면서 ‘마호로 역’ 시리즈가 됐다. 두 주인공이 각종 심부름 의뢰를 해결하는 ‘마호로 역 번지 없는 땅’(2009), ‘마호로 역 광시곡’(2013) 등 세 소설은 일본에서 150만부 판매고를 올리며 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세 작품이 동시에 한국어 번역본으로 출간됐다. 유쾌한 필치로 이어지는 사건들은 버디무비(두 남자 배우가 콤비로 출연하는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TV 드라마, 영화, 만화로도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