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46) 작가가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The International Booker Prize) 최종 후보에 올랐다. / 연합뉴스

“한국 장르 문학이 이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수준에 올랐다는 사실이 증명되어 그 점이 가장 기쁩니다.”(정보라 작가)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 이후 6년 만에 부커상 최종심에 오른 정보라(46) 작가는 7일 이렇게 말했다. 영국 최고 권위의 세계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이날 정보라의 ‘저주 토끼’를 최종 후보(쇼트 리스트) 6편에 포함했다. 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인터내셔널 부문은 비(非)영어권 작가들의 영어 번역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5만파운드(약 7980만원)의 상금도 원작자와 번역가가 반씩 나눠 가진다. 이 책을 번역한 안톤 허(허정범) 역시 최종심에 함께 올랐다. 한강도 과거 수상 당시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와 함께 상을 받았다.

새로운 표지로 출간된 '저주 토끼' /연합뉴스

최종심에 오른 정보라의 ‘저주 토끼’(아작)는 한 노인이 친구의 복수를 위해 저주를 걸어 만든 토끼 전등이 살아 움직이면서 복수의 대상이 가진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는 표제작과 다른 9편의 단편을 담은 소설집. 정보라는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지금까지 특별한 문학상도 받은 적이 없다. 부커재단은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로 현실적인 공포, 잔혹한 현대 가부장제, 자본주의를 부각했다”고 평했다.

공식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국내 문학상을 받은 적도 없는 정 작가를 해외에 알린 주역은 번역가 안톤 허였다. 지난달 29일 정보라 작가와 함께 본지와 만났던 그는 “2018년 와우북페스티벌 가판대에서 읽어본 ‘저주 토끼’의 문장이 너무나 아름다워 지나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정보라 작가는 “(내 책을 번역하겠다는 말에 놀라) 처음엔 신종 사기인 줄 알았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정보라(왼쪽) 작가와 번역가 안톤 허. 당시 무명이었던 정보라 작가는 2018년 자기 책을 번역하겠다는 안톤 허를 보고‘신종 사기 아닌가’라고 의심했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지난달 10일 1차 후보작(롱 리스트) 발표 당시 안톤 허가 번역한 ‘저주 토끼’와 ‘대도시의 사랑법’(창비·박상영) 두 작품이 리스트에 올라 화제였다. 역대 부커상 후보에 한국인 출신 작가 2명의 작품, 그것도 같은 한국인 번역가가 작업해 오른 경우는 처음이었다. 안톤 허는 7일 본지 통화에서 “양꼬치 집에 앉아 있다가 소식을 접했다. 꿈만 같다”고 했다. 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전 세계에 내가 반한 작품 ‘저주 토끼’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은 그의 생일이었다.

영어식 번역명 때문에 많은 이가 한국계 외국인으로 오해하지만, 안톤 허는 ‘초·중·고·대 다 한국에서 다닌 한국인’이다. 코트라 해외 주재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홍콩, 에티오피아, 태국 등을 두루 다녔고, 출생지도 스웨덴이다. 그는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과 해외를 오가다 보니 오히려 한국계 교포보다 이중 언어에 익숙하다. 특히 ‘군대’도 다녀왔다. 한국 정서를 더 잘 읽고 번역할 수 있는 이점”이라고 했다.

소설가 한강이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이 상을 받았고, 2019년 황석영의 ‘해질 무렵’은 1차 후보에 선정됐었다. 올해 수상작은 다음 달 26일 발표된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야곱의 책들’ 등 5편이 ‘저주 토끼’의 경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