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조주관 지음|아르테|336쪽|2만4000원

“이 위대한 그림 앞에 서서 내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마음 깊이 감화되어 있던 남편을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 모른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는 그의 마음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나는 조용히 방에서 물러나오곤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안나가 언급한 ‘위대한 그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라파엘로의 대표작 ‘시스티나의 마돈나’. 아기 예수를 안고 구름 위에 선, 슬픈 듯 맑은 눈동자를 한 이 성모의 초상 사본을 서재에 걸어놓고, 도스토옙스키는 기도하며 최후의 장편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써 내려갔다. 러시아 사람들은 성모를 그린 ‘이콘(성화)’이 기적의 힘을 지녔다고 여긴다.

라파엘로가 1513~1514년 경 그린 '시스티나의 성모'./드레스덴미술관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도스토옙스키를 매혹시킨 그림들을 통해 그의 문학과 삶을 바라본다. 도스토옙스키는 여행 때마다 유명 미술관을 찾아다녔고 그림을 작품의 주요 모티프로 삼기도 했다. 스위스 바젤 미술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홀바인 그림 ‘무덤 속 그리스도의 시신’을 “구원이나 희망이 없는 절망적 상태”를 암시하며 ‘백치’에 등장시킨다. 빛과 어둠을 극적으로 대조시킨 렘브란트의 화법(畵法)을 작품에 차용한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가 벽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며 꺼져가는 촛불 앞에서 소냐에게 살인을 고백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고통을 통한 구원’이라는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문법이 그가 사랑한 그림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상화되는 과정을 포착한 책. 품에 안은 아기의 고난을 예견한 비통함으로 아름다워지는 성모의 얼굴에서, 도스토옙스키는 구원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