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금껏 여러 차례 은퇴를 선언했지만, 어김없이 번복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재작년 개봉한 그의 근작은 ‘거장의 은퇴작이 될 것’이라고 홍보하며 제목과 포스터 외 다른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신비주의 마케팅으로 개봉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 영화가 요시노 겐자부로의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1937)의 제목을 그대로 따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독자들에게 다소 생소했던 이 원작이 한동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열다섯 살 중학생 코페르다. 본명은 혼다 준이치지만,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처럼 조카가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길 바라는 외삼촌이 별칭을 지어주었다. 책의 각 장은 코페르의 경험담과 그에 덧붙인 ‘외삼촌의 노트’로 구성되어 있다. 청소년 인생론의 고전답게 사물을 보는 방법, 용기, 발견, 가난 등 삶의 진지한 주제들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룬다.

그중 ‘가난’을 다룬 에피소드가 유독 인상적이다. 늘 유부를 도시락 반찬으로 싸와서 ‘유부’라는 별명으로 놀림받는 우라가와는 가난한 두부 장수의 아들이다. 코페르는 결석한 우라가와의 집을 방문했다가 가난이라는 현실을 처음 마주하지만, 동시에 우라가와가 얇게 썬 두부를 튀겨내 유부를 만드는 능숙한 솜씨를 목격한다. 비록 학교에서 우등생이 아니라 해도 자기 일터에서만큼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우라가와를 통해 그가 언젠가는 가난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제시한 것이다. 가난을 직시할 때도 그것이 영속적이지 않으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더한 데서 따뜻한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

작품 말미에 이르러 코페르는 “온 세계 사람들이 서로 친한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내는 그런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노트에 적는다. 이런 평화적 메시지 때문인지 태평양전쟁기엔 한동안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신초샤의 ‘일본 소국민 문고’ 중 마지막으로 나온 이 책은 본래 극작가 겸 소설가 야마모토 유조가 쓸 예정이었으나 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요시노가 대신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정식 한국어판은 2012년 양철북에서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