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동물들
최태규 지음|이지양 사진|사계절|384쪽|2만4000원
서울 시내에서 가방에 고양이 사료나 간식 캔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 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 ‘나만 없어 고양이’란 유행어가 대변하듯 몇 년 새 내가 기르는 고양이가 아니더라도 이를 예뻐하고 돌보는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 ‘캣맘’ ‘캣대디’란 말도 생겼다. 그러나 우리 동네 고양이의 허기를 잠시 달래주는 이 행위가 길에서 떠도는 고양이의 개체 수를 크게 늘렸고 고양이 그 자신은 물론 도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에도, 고양이에게 밥 주는 문제는 여론에 밀려 번번이 제대로 된 논의조차 되지 못한다.
이런 면에서 그야말로 ‘미움받을 용기’를 낸 책이다. 사육 곰 산업을 끝내기 위해 사육 곰을 구조하고 돌보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이자 수의사인 저자는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동물 보호 단체들이 대규모로 성장하고 ‘반려동물’ 문화가 생기면서 말하기 어려웠던 논의들을 과감하게 꺼내 든다. 이런 식이다. 어째서 우리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아야 할 그 많은 이유를 알면서도 기어코 밥그릇을 놓는가? ‘개’ 대신 ‘반려견’이란 말을 쓰며 유아차에 태우는 것이 정말 개를 존중하는 일인가.
한국에선 2015년 이후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이라고 쓰는 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개가 ‘반려견’이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는 일방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를 ‘반려동물’이란 말이 가리고 있는 현실에서 ‘돌봄’이란 이름의 새로운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 ‘반려견’은 인간의 사회 문화적 혹은 경제적 필요에 따라 (과거와는) 다른 존재가 돼 가고 있으며, 그 필요는 대략 ‘돌봄의 대상’이란 것으로 모인다. 개를 기르는 사람은 개를 ‘아기’로 보며, 어른이 되지 않는 ‘아기’를 돌보는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이는 한국 도시에서 잘 포장된 길을 걷다가 만나는 개와 그 주인의 모습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 개들은 보통 덩치가 작고 정기적으로 털을 깎는다. 털을 밀면 겨울에는 추우니 인간의 옷처럼 생긴 ‘개옷’을 입힌다. 도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애견 미용실’은 한국의 독특한 ‘애견 문화’다. 저자는 묻고, 답한다. “우리는 개를 무엇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가. 우리가 개를 무엇인가로 만들려고 한다면 그것이 개에게도 좋은 일인가?” “개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개를 개 자체로 존중하면 좋겠다. 그 존중은 개가 가족이라거나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개라서 받는 존중이어야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용기’는 ‘사랑’에서 왔음을 알게 된다.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문제 역시 마찬가지. 한국은 정책적 차원에서 길고양이에게 무관심한 나라다.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이를 잡아서 중성화하고 다시 길에 풀어주는 TNR 정책만을 배타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저자는 “눈앞의 동물에게 이타적이고 싶은 인간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강력하다”며 “나만 해도 동네에서 만나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기란 제법 애를 써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애를 써야 하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낸다. “사람이 의도적으로 먹이를 공급한다면 TNR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길고양이의 밀도를 낮추기는 어렵다.”
나아가 TNR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길고양이 정책의) 정량적 목표는 길에서 얼마나 많은 고양이가 살도록 할 것인가가 될 텐데, 아직 우리는 그런 논의를 시작조차 못 하고 있다. ‘불쌍하다’는 대중의 감각에만 의존하는 정책은 ‘중성화하고 밥을 주면 길고양이가 덜 불쌍해질 것’이라는 결론만 낼 뿐이다.”
‘도시의 동물들’이란 제목에 걸맞게 저자는 개·고양이 외에도 근래 수많은 도시인을 놀라게 한 러브버그부터, 종종 뉴스에서 난동범으로 몰리는 멧돼지, 차에 치여야만 가까이 마주하는 고라니, 심지어 수족관 속 넙치와 우럭에게도 충실한 시선을 보낸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물고기를 포함하는 동물의 복지가 인간의 복지와 연결돼 있다는 ‘원 웰페어(One Welfare)’ 개념이 우리 사회에 한번 쿵 하고 떨어질 날이 올 것”이라고. 저자의 말대로 만약 그런 날이 오게 된다면, 이 책이 그 날짜를 조금은 앞당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