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소설가에게 한 가지 배워야 합니다. 철학자는 남의 사상을 끌어들여 해석하는 일로 평생을 보내지만, 소설가는 언제나 자신의 체험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려 하지 않습니까?”

‘그대에게 가는 먼 길’(대양미디어) 1부를 낸 철학자 이종철(69·사진) 연세대 인문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이 말했다. 이 책은 ‘자전적 철학소설’이다. 사르트르나 비에리 같은 철학자가 소설을 쓰기도 했지만 국내에선 흔한 일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에 철학도로서 겪은 삶을 쓰는 동시에, 한 시대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다”고 그는 말했다.

장애가 있어 기업체에 들어갈 수 없었던 그는 법대에 진학했고, 철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헤겔을 비롯한 근대 독일철학을 전공했다. 시간강사 생활이 길게 이어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추운 집에서 살던 중 어린 딸이 “(따뜻한) 모텔 가면 안 돼?”라고 조르는 신산한 삶의 한편으로, 시대의 변혁을 고민하던 한국헤겔학회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출범을 둘러싼 이야기가 책 속에서 펼쳐진다. 그 다이내믹했던 시대는 온갖 이론과 사상이 난무하던 ‘지적 르네상스’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가 ‘68혁명’을 거치며 이론과 사상을 정립한 반면, 우리는 귀중한 역사적 체험을 과거의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2021년 책 ‘철학과 비판’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강단 철학계를 비판해 파란을 일으켰다. 삶과 시대의 문제에 대해 통찰을 보여줄 수 있는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체험과 생각·언어를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는 데 이 소설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