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브레인

레오르 즈미그로드 지음|김아림 옮김|어크로스|380쪽|2만2000원

어떤 이념을 극단적으로 지지했던 사람은 반대쪽으로 전향하더라도 여전히 극단으로 치닫는 경향이 있다. 사회학자 에릭 호퍼는 ‘영혼의 연금술’에 이렇게 썼다. “하나의 열정에서 다른 열정으로, 심지어는 그 반대 방향으로 전환하는 데 따르는 혼란은 우리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다. 모든 열정적인 마음은 기본적으로 비슷하게 구성된다.” 그러나 사실 이는 ‘가슴’이 아닌 ‘머리’의 영향이다. 어떤 사람들의 뇌는 유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사고에 빠지기 쉽다. 인지적으로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중립 지대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좌파냐 우파냐는 중요하지 않다. 영국 신경과학자로 정치-신경과학(political neuroscience) 분야 연구자인 저자는 2016년 700명 이상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정치성 당파성과 인지적 유연성 간의 관계를 연구했다. 이 결과 극우와 극좌는 인지적으로 서로 비슷했다. 두 극단 모두 중립적이고 정치와 관계없는 상황에도 머릿속 도식 체계를 새롭게 적응시키고,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독단적 뇌’를 가진 것이다. “극단주의가 가진 이러한 경직성은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결국 가장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는 오래된 ‘말발굽 이론’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편협성과 경직성이라는 측면에서 극좌와 극우가 비슷하다는 이론이다.” 다만 저자의 연구 결과, 가장 유연한 사람은 약간 좌파 쪽으로 기운 초당파적 성향을 띠고 있었다.

뇌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에 지배된 상태에서 환희를 느낀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는 단순히 우리 삶의 외피가 아니라 피부, 두개골, 신경세포로 들어간다"면서 "경직된 이데올로기에 몰입한 사람은 정치적 의견과 도덕적 취향뿐 아니라 뇌 전체가 특정한 방식으로 조각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의 관심사는 이데올로기를 역사적 추세나 사회운동이 아닌 ‘심리현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는 이데올로기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일종의 내러티브’라 정의한다. “퇴행적이든 진보적이든, 이데올로기는 선과 악의 이분법에 사람들을 몰아넣으며 그 사이나 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간주한다.”

인간의 뇌는 이데올로기를 갈망할 수밖에 없도록 작동한다. 뇌의 기본 원리 중 하나는 뭔가를 만들어내고 창의적인 예측을 한다는 것이다. 패턴을 쉽고 빠르게 감지하며 그렇게 얻은 인상을 직관적으로 다음 사건을 추정하는 데 사용한다. 또한 뇌는 타인의 관심을 원한다. 외부와 소통하며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것이 생존과 재생산에 필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데올로기는 예측과 의사소통 문제에 대해 뇌가 내놓은 군침 도는 해답”이라고 말한다.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질문, 우리가 따를 대본, 우리가 속할 집단이 무엇인지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을 제공한다. 생각과 행동을 안내하는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이해하고, 다시 나 자신도 이해받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을 충족해주는 빠른 지름길이다.”

인간의 뇌가 이데올로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었다면, 왜 어떤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극단적으로 배척하고, 어떤 사람들은 중도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상대가 자기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 저자는 수천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사고가 가장 경직된 사람들은 도파민이 뇌 전체에 분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고가 매우 경직된 사람들은 뇌의 의사결정 중심인 전전두엽 피질에 도파민이 비교적 덜 집중된다. 그 대신 이들은 즉각적인 본능을 제어하는 중뇌의 한 구조인 선조체(線條體)에 도파민이 보다 많이 집중되는 유전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도파민은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우리가 보상을 받거나 스릴, 즐거움을 느낄 때 방출하는 화학적 메신저이기도 하다. 전전두엽 피질에 보다 많은 도파민이 담겨 있는 사람은 대개 규칙이 바뀌는 게임에 더 잘 적응했다. 다시 말해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전전두엽의 도파민 수치가 더 높은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면 독단적인 뇌 유전자를 타고난 사람은 필연적으로 극단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극단 유튜버들이 만든 세계관에 잠식된 이들, 이념에 따라 극단적으로 양분된 우리 사회엔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일까?

다행히도 저자는 “극단주의에 취약하도록 하는 인지적, 성격적 특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전자의 발현이란 완전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 환경에 대한 반응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독단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지적 겸손’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는다. “경직성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반(反)이데올로기적 뇌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야 합니다. 그것은 독단주의의 유혹을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거부하는 뇌입니다.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지요.” 원제 Ideological Br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