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Books 팀장

숲 근처에 살고 있는지라 거실 창을 열면 계절의 변화를 손에 잡힐 듯 느낄 수 있습니다. 간밤엔 소쩍새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낮에는 물까치 한 마리가 분주히 나뭇가지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았고요. 봄이 무르익고 있다는 신호, 1년 중 몇 안 되게 창문을 열어놓기 좋은 날들입니다.

며칠 전 봄비가 내리더니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눈 깜짝할 사이 연둣빛 잎새가 돋고 메말랐던 줄기도 통통하게 물이 올랐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며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 금빛으로 빛나는 나무껍질이 영국 낭만주의 화가 존 컨스터블(1776~1837)의 풍경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컨스터블은 나뭇잎 가장자리에 흰색 혹은 연한 노란색 점을 찍어 햇빛에 반사되며 깜빡이는 듯한 효과를 주었습니다. ‘컨스터블의 눈(Constable’s Snow)’이라고 하는 기법이지요.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펼쳐 컨스터블을 언급한 부분을 읽어 봅니다. 동시대 화가 J.M.W. 터너가 17세기 풍경화 거장 클로드 로랭과 경쟁하며 그를 능가하길 원했던 것과 달리 컨스터블은 로랭의 눈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본 걸 그리려 했다고 합니다. 다른 화가들은 전통적 기준에서 보아 ‘그림 한 폭 같은(picturesque)’ 소재를 택했지만 컨스터블에게 중요한 건 오직 ‘진실’이었다고요. “꾸밈없는 화가가 자리할 곳은 충분해. 오늘날의 가장 큰 악덕은 허세(bravura)야. 그것은 진실을 넘어서려 하지.” 그가 1802년 친구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입니다.

4월은 허세 없이 담백한 계절. 보름 전 주말엔 나뭇가지들이 ‘컨스터블의 눈’ 아닌 진짜 눈을 이고 있었고 지난 토요일 서울엔 강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졌지만, 이번 주말은 모처럼 화창하다고 하네요. 그림 같은 봄 풍경 마음껏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