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간
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 | 김민욱 옮김 | 에이도스 | 542쪽 | 2만6000원
“왜 이제야 이 사실을 알려주는 거냐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진화인류학자이자 ‘모성 연구의 대가’로 알려진 저자는, 지금까지 ‘독박 육아’로 이미 아이를 다 키운 20세기 어머니가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반응을 할 거라고 예측한다. 심지어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1962년에 ‘교육 수준이 높고 책임감 있는 남성에게 육아가 장려되는 문명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은 그저 집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해서 가족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는 얘기다. 자식을 양육하는 생물학적 부성(父性)이 이미 내재돼 있었다는 것이다. 내분비학자들은 아기를 돌보는 아버지에게서 어머니의 호르몬 수치와 비슷한 변화를 발견했고, 신경과학자들은 아버지의 뇌도 어머니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양육하는 남성’은 본성에 반해서 마지못해 육아를 하는 게 아니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 양육’은 필수적이었으며, 아버지의 돌봄과 양육은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 아주 오래전에 진화한 본성이었다고 주장한다. 혹독한 환경 변화로 멸종 위기에 내몰린 인류는 공동 양육을 하고 음식을 나누며, 타인의 마음을 읽게 됐고, 남녀가 서로 의존함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양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유전적 친연관계보다 아기와 얼마나 친밀하게 오랜 시간을 보냈느냐는 문제라고 말한다. 이제는 ‘남성의 돌봄 본능’을 일깨울 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