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책을 읽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감상을 기록하고, 이를 나누고 싶어한다. 소셜미디어의 시대, 읽은 책을 남들에게 과시하고픈 은근한 욕심도 생긴다. MZ세대(1981~2000년대 초반 출생)의 독서엔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적극 개입한다. 책을 찍고, 공유하며, 자랑하고, 남의 감상을 훔쳐본다. 카카오톡 같은 채팅 메신저의 형태로 책 내용 요약본을 읽어 핵심만 빠르고 쉽게 취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의 독서 풍속을 독서앱(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통해 유형별로 알아봤다.
◇읽은 책 두께 자랑 ‘과시형’
책을 책장에 잔뜩 꽂아 놓고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구식이다. 이제 책을 쌓아 그 두께를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에 자랑한다. ‘북적북적’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 기록할 수 있는 앱으로, 20만명의 이용자 대부분이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스마트폰 앱을 켜고 소설가 하성란의 소설집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를 입력하자 1.98cm가 표시됐다. 책을 추가하며 두께가 늘어날수록 사용자 캐릭터도 성장한다. 쌓인 책 두께에 따라 도토리(1cm)→귤(6cm)→바게트(36cm) 등으로 진화한다. 서비스를 개발한 박성은씨는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책 내용 ‘공유형’과 ‘훔쳐보기형’
인상 깊은 문장을 발견했을 때 노트와 펜을 더 이상 찾지 않아도 된다. 책에 밑줄을 긋거나 노트에 따로 적는 일은 이제 스마트폰이 수행한다. ‘리더스’ 앱을 켜고 페이지를 사진 찍으면,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남길 수 있다. 페이스북처럼 책 사진과 감상을 친구들과 공유할 수도 있고, 남들이 올려 놓은 게시글을 살펴볼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처럼 남의 계정에 들어가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댓글을 달 수도 있게 해 사용자들끼리 독서 기록을 공유하고 책을 추천하도록 했다. 서비스 출시한 지 1년이 안 돼 회원 수는 20만명을 넘었다. 전체 회원의 70%가 20·30세대. 개발사 아씨의 윤영훈 대표는 “나와 비슷한 독서 성향을 가진 이용자까지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쉽고 빠르게 요점 파악하는 ‘채팅형’
가뜩이나 읽고 볼 콘텐츠가 넘치는데 진득하게 책 한 권을 통독하기란 쉽지 않다. 전자책 서비스 업체 ‘밀리의 서재’는 카카오톡으로 채팅하듯 책의 요점을 전달해주는 ‘챗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밀리의 서재 관계자는 “다소 어려운 인문·사회·경제 서적도 10~15분 분량의 대화 형식으로 쉽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책 720권을 채팅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가령 독일 저자 세바스티안 헤르만이 쓴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를 챗북으로 열면 저자가 채팅 친구로 등장해 내용을 말해준다. 말풍선에 “익숙함과 친숙함은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거나, 적어도 부정적인 감정을 사그라지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란 문장이 나타나는 식이다.
MZ 세대의 독서법에 우려는 없을까. 표정훈 출판 평론가는 “책 내용을 요약한 콘텐츠는 이야기나 논지의 전개를 무시하고 결론만을 제시한다”며 “독자들이 저자의 원래 메시지를 오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서하는 호흡과 시간이 얕아지고 짧아지는 것도 문제다. 그는 “오랜 시간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메시지가 머리에 남지 않고 쉽게 휘발해버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