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부터 2008년까지 대중목욕탕이었고 2016년부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돼 온 서울 아현동 행화탕. 재개발로 철거를 앞두고 20일부터 사흘간 '행화탕 장례식'이 열린다. 조문하며 이 공간을 기억할 수 있는 마지막 축제다. /장련성 기자

희한한 부고(訃告)를 받았다. 고인(?)은 58년생. 사람이 아니고 건물이었다.

“행화장례. 삼일장(5월 20~22일). 조문 가능. 복합문화공간 행화탕의 마지막 순간을 ‘예술로 목욕’했던 분들과 함께 기억합니다.”

행화탕이라는 건물이 살아서 치르는 장례식이었다. 지난 13일 서울 아현동 613-11번지. 노란 외벽에 새겨진 ♨(목욕탕) 기호와 작은 굴뚝부터 남탕·여탕을 구분한 출입구, 내부의 타일과 하늘색 때밀이 베드(bed)까지 ‘왕년에는 때 빼고 광내는 곳이었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행화탕은 1958년 지어진 대중목욕탕으로 50년을 보냈다. 찜질방과 사우나에 밀리다 아현동 일대가 재개발되기 시작하자 2008년 문을 닫았다. 폐업한 뒤 1~2년은 창고나 고물상으로 사용됐다. 기획그룹 축제행성은 방치돼 있던 행화탕을 2016년 초 임차해 ‘예술로 목욕합니다(Bath with Art)’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평소엔 카페로 운영하면서 공연·전시·영상을 보여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축제행성 서상혁 대표는 “재개발 예정지에 속해 처음부터 시한부(時限附)였는데 ‘5월 24일까지 퇴거하라’는 공문을 받았다”며 “장례식은 행화탕의 마지막 프로젝트”라고 했다.

◇행화탕의 마지막 봄날

예술가들은 목욕탕이라는 과거를 지우지 않는 방향으로 이 공간을 업사이클링했다. 쓰레기 더미에 처박혀 있던 간판 ‘행화탕’을 꺼내 내부에 건 게 시작이었다. 전기와 수도, 난방이 다시 피처럼 돌기 시작했다. 남녀 탈의실이 있던 자리는 카페로, 탕이 있던 자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예술로 목욕합니다’는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때를 밀자는 취지였다. 지난 5년 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작업 100여편이 행화탕을 지나갔다. 카페에서 가장 대중적이라는 ‘반신욕 라떼’를 주문했더니 쟁반 대신 목욕대야에 담겨 나왔다. 때수건은 컵받침이다. 20~30대 사이에서는 핫플레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행화탕 장례식 포스터 /하지훈 제공

“아현동에 살 때 자주 갔던 행화탕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 “삼가 행화탕의 명복을 빕니다”···. 소셜미디어에 장례식을 알리자 이런 추모 댓글이 달렸다. 최여정 공연칼럼니스트는 “행화탕은 목욕을 하던 곳에서 공연·전시를 보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특별한 장소였다”며 “장례식은 공간도 사람의 삶처럼 유한하며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라 새롭다”고 했다.

◇삼일장은 이렇게 열린다

행화탕(45평)은 넓지 않다. 과거에는 여탕에서 세신사가 노래를 부르면 남탕에서 박수가 나왔다고 한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고도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랑방 노릇을 해왔다. 장례식을 앞둔 행화탕은 내부 집기를 들어내고 정갈하게 청소하는 ’염'을 치렀다.

2018년 10월 행화탕 '예술로 목욕하는 날' 공연 /행화탕

삼일장은 20~22일 날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열린다. 국화꽃이나 묵념은 없다. ‘올 댓 재즈’ ‘세신사의 노래’ 같은 음악이 빈소를 채운다. 상주를 맡은 서상혁 대표는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면서 살아 있는 동안 알차게 마무리하자는 생각으로 삼일장을 연다”며 “슬프지만은 않다. 일상에서 즐겨 입는 옷을 입고 함께해달라”고 했다.

고인(1958~2021)은 2018년 환갑도 굿즈를 만들며 축제처럼 치렀다. 조문객은 행화탕 타일에 각자의 추억을 남길 수 있다. 부의금은 고인을 기록하는 비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살구청(행화=살구꽃)이나 수건, 머그컵 중 하나를 답례품으로 준다. 조문은 누구나 가능하다. 과거 목욕탕에서 몸의 때를 밀었던 분이든 예술로 마음의 때를 닦았던 분이든 오늘이 처음인 분이든.

2018년 행화탕 환갑 기념 굿즈 /행화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