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A양은 작년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증을 달고 살고 있다. 두통이 심할 땐 등교도 어렵고, 입맛이 없어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 누워있는 시간은 늘었는데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병원에서 뇌 MRI(자기공명영상) 검사까지 해봤지만 문제가 없다고 나오자 A양 엄마는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A양은 “엄마마저 고통을 몰라줘 속상하다”고 했다.
이런 아이의 행동은 꾀병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울증의 신호일 수 있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울증은 어른들만의 질환처럼 여겨지지만 성인과 마찬가지로 아동·청소년에게도 우울증은 찾아온다. 지난 2017년 4대 권역(서울·고양·대구·제주)의 소아·청소년 정신질환 실태 조사 결과, 2.5%가량은 상당한 수준의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 이후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줄곧 자살이었다.
◇우울감 표현 방식 성인과 달라
아이들이 우울감을 갖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친구 관계, 부모와의 관계, 학업 부담, 외모, 경제적 어려움, 경쟁적 분위기, 학교 폭력과 따돌림, 상실의 경험 등이 원인일 수 있다. 여러 스트레스 요인이 동시에 찾아오거나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 기술이 부족할 때, 또는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거나 자신의 생각·감정을 무시당했을 때에도 우울감으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친구와 어울리는 기회가 줄고 취미 활동도 감소해 우울감을 해소하기 어려운 것도 큰 문제다.
아이의 우울감을 알아채기 어려운 이유는 어른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울감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성인과 달리 우울한 감정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대신 짜증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기분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의욕이 없고 집중하기 어려워하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거의 매일 지속적으로 이런 감정 변화와 함께 수면 장애나 식욕 저하 등이 나타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두통이나 복통, 가슴 두근거림, 과호흡 등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등교 거부, 자해 행동, 스마트폰 과몰입, 음주, 흡연과 같은 잦은 일탈 행동도 우울증을 겪는 아이들에게서 많이 일어난다.
◇공감하며 이겨낼 수 있게 도와야
우울 장애를 겪는 아이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 첫째는 아이가 겪는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야기를 경청해줘야 한다. 집중을 못 하거나 무기력해하는 것을 하기 싫은 일을 회피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은 무기력하고 짜증이 나면서도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아이가 자신의 상황을 말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무엇 때문에 힘든지 스스로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아이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어주려 노력하는 것이다. 대화 중에 때로 고개를 끄덕여 잘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해주는 정도도 좋다. 아이가 ‘엄마가 다그쳐 속상했다’고 말했다면 ‘아까 그 상황에서 네가 속상했구나’라며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만약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이라면, 아이의 입장에서 느낄 만한 감정을 추측해 ‘너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몰라줘서 속상했을 수 있겠다’고 말을 건네는 것이 좋다.
셋째는 음주·흡연·자해 등과 같이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한계를 설정하고 함께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행동을 조절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너무 감정적으로 말하거나 위협하듯 이야기하면 아이가 말문을 닫을 수 있으므로 “건강이 염려된다”고 표현하는 게 좋다. 단숨에 문제 행동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단계별로 목표를 정하고, 아이 스스로 노력하도록 격려하는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울증은 금방 회복되는 질환이 아니다. 전문가와의 상담, 약물 복용, 주변의 지지, 변화를 위한 작은 실천 등을 통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 아이에게 도움이 필요한 경우라면 가까운 병·의원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전화 및 온라인 상담 센터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