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7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스페셜 대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오랜 팬이자 동료 감독으로서 직업적 비밀을 캐내고 싶은 욕심입니다.”(봉준호)

“질문을 받은 것만으로도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인데요.”(하마구치 류스케)

칸의 두 거장이 부산에서 만났다. 부산국제영화제 둘째 날인 7일 부산 영화의전당 중극장. ‘기생충’으로 2019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52) 감독과 ‘드라이브 마이 카’로 올해 칸 각본상을 받은 하마구치 류스케(43) 감독의 특별 대담이 열렸다.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50여 쪽 동명(同名) 단편을 3시간의 장편 영화로 펼쳐낸 작품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지난 3월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우연과 상상’으로 심사위원 대상(은곰상)을 받은 거장이다. 칸·베네치아·베를린 등 이른바 ‘3대 영화제’에서 한 해에 두 작품으로 동시 수상한 것도 이례적인 경우다.

7일 부산국제영화제 특별 대담에서 만난 봉준호(왼쪽)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이들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아시아의 영화 거장들이다. /스포츠조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하마구치 감독을 위해 봉 감독은 이날 직접 마이크를 잡고 질문자를 자처했다. 대담 도중에 봉 감독은 외투를 벗고 반팔 검은 티 차림으로 간간이 부채를 부치며 질문을 이어갔다. 당초 예정 시간은 1시간 30분. 하지만 봉 감독은 “예정보다 길어질 것이라고 본다. 관객들의 질문 시간은 보장할 수 없으니 양해해달라”고 질문 욕심을 드러냈다.

평소 두 감독은 서로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팬으로 유명하다. 지난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을 주제로 하마구치 감독은 해설을 했다. 올해 대담은 2년 전 무대의 ‘연장전’인 셈이다. 이날 대담에서도 하마구치 감독은 “’살인의 추억’은 대걸작”이라고 했다.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봉준호 X 하마구치 류스케' 스페셜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봉 감독 역시 하마구치 감독의 초기 단편 영화부터 최신작까지 모두 빠짐없이 챙겨보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제가 매 순간 어디로 달아날 것인지 회피적 고민을 하는 ‘불안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 감독은 단단한 바윗덩어리 같은 철학을 지닌 ‘확신의 감독’인 것 같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하마구치 감독이 “실은 저도 불안해 죽겠습니다”라고 하자 200여 관객도 폭소를 터뜨렸다. 봉 감독이 하마구치의 작품을 격찬할 적마다, 하마구치 감독은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혼토니(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대담은 배우 캐스팅부터 대화 장면 촬영, 대사 처리 방법까지 두 감독의 직업적 고민에서 출발했다. 하마구치 감독은 캐스팅 방식에 대해 “1시간 정도 수다를 떠는 식으로 오디션을 본다. 대화를 나누면서 진심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배우들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봉 감독도 “저 역시 갑자기 시나리오 한 쪽을 주면서 ‘연기 해보라’고 하는 방식은 민망하고 불편하다. 연기력은 독립 영화와 연극 출연작을 통해서 살펴보고 30분에서 1시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답했다.

이날 이들은 정치·역사·외교적 쟁점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오로지 영화에 대해서만 대화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담은 한일(韓日) 두 영화광의 끝없는 ‘끝말잇기’이자 ‘영화 퀴즈’로 변해갔다.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거장 에릭 로메르와 하마구치의 스승인 일본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홍상수 감독에 대한 애정도 이들을 이어주는 공통 분모였다. 대담도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서 2시간 동안 계속됐다. 물론 통역이 있었지만 봉 감독의 말처럼 양국 사이의 ‘1인치 장벽’도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