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를 깔 수 있는 ‘호두까기 인형’ 실물과 호두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소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 인형과 환상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유니버설발레단

겨울 왕자(王子)님이 올해는 일찍 오셨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의 ‘호두까기 인형’ 서울 공연이 10월 예매 순위(인터파크) 톱10에 진입했다. 호두의 계절이 일찌감치 시작된 것이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연말과 크리스마스 시즌을 평정해온 대표 상품이다. 작년에는 왕자가 실종됐다. 코로나 사태로 거리 두기가 격상되면서 국립발레단도 UBC도 이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호두까기 인형’ 없는 크리스마스는 20년 만이었다. 작년에 못 깐 호두라서 올해 더 깔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한 ‘호두까기 인형’.

◇전국을 도는 호두 왕자

국립발레단에는 “너는 호두 몇 번 까봤니?”라는 질문이 있다. 몇 년 차인지를 이렇게 묻는다. 단풍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지만 호두는 아래서 위로, 지역에서 중앙으로 까면서 올라온다. 오는 11월 말부터 전국 ‘호두까기 인형’ 일정표가 확정됐다. <표 참조>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여정

UBC는 11월 26~27일 천안을 시작으로 고양, 대전을 거쳐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 김세영 홍보팀장은 “작년에 양대 발레단이 공연을 못 해 올해 ‘호두까기 인형’은 좀 더 빨리 객석을 열었다”며 “설명이 없어도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라 문훈숙 단장의 해설은 없다”고 말했다. 국립발레단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부산에서 출발한다. 대구~전주를 찍고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관객을 만난다.

지방 공연장들이 알아서 조율하기 때문에 두 발레단이 한 도시에서 경쟁하는 일은 서울을 빼고는 없다. 그런데 두 발레단은 왜 광주광역시에 가지 않을까? 크리스마스에 광주시립발레단(단장 최태지)이 자체적으로 호두를 까기 때문이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유니버설발레단

◇보복 소비? 공연 기간 늘려

공연 중인 대형 뮤지컬 틈에서 개막이 한참 남은 발레가 월간 예매 순위 톱10에 오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국립발레단 김현아 홍보팀장은 “작년에 못 했기 때문에 보복 소비가 엄청날 것 같다”며 “무대 셋업과 리허설 일정을 하루 이틀 빼고 공연 기간을 더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두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소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 인형과 환상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막이 오르면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차이콥스키 음악을 사용하는 것도 똑같다. 하지만 안무·무대·의상은 사뭇 다르다. 국립발레단은 러시아 볼쇼이 버전으로, 더 역동적이고 테크닉이 화려하다. UBC는 러시아 마린스키 버전으로 1막은 아역이, 2막은 성인 발레리나가 여주인공으로 춤춘다. 마임이 섞여 있어 더 동화적이고 우아하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 /유니버설발레단

◇헷갈리지 마세요

서울에서는 12월에 국립발레단과 UBC가 ‘호두까기 인형’을 올리기 때문에 웃기면서 슬픈 해프닝이 벌어진다. 국립발레단 공연을 예매한 관객이 UBC 공연장으로, 또는 UBC 공연을 예매한 관객이 국립발레단 공연장으로 가는 사고가 왕왕 발생한다. 다시 말하자면 국립발레단은 올해 예술의전당, UBC는 세종문화회관에서 호두를 깐다.

UBC는 “관객이 잘못 알고 도착하더라도 매진이 아니라면 이 공연을 원하실 때 보여 드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왜냐고? 크리스마스니까(it’s Christmas).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국립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