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폄훼’, ‘안기부 미화’ 등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JTBC 새 주말드라마 ‘설강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네티즌들이 방영 중단 청원을 올리고 제작 지원에 참여한 기업에 대한 불매 의사를 표시하면서, 광고계도 제품 협찬을 취소하는 등 ‘손절’에 나섰다.
‘설강화’ 첫 방송 이후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드라마 설강화 지원 회사 리스트’라는 제목의 글이 공유되고 있다. 해당 글에는 드라마 제작 지원, 제품 협찬, 장소 협조에 참여한 업체명과 공식 소셜미디어 주소 등이 담겼다.
목록에 언급된 업체들에 대해 소비자들이 불매 운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자, 일부 업체는 협찬 및 제작지원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협찬사인 떡 브랜드 ‘싸리재마을’은 19일 공식홈페이지에 ‘jtbc 드라마 설강화 소품 협찬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협찬 철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업체 측은 “작년 12월 지자체로부터 소개를 받아 연락한다는 드라마 제작 소품팀의 전화가 있었다. 그동안 한번도 협찬을 진행해본 경험이 없는 저희들은 떡 홍보가 될 거라는 단순한 기대로 협찬을 결정했다”며 “출연 배우와 제목을 들었을 뿐 어떤 내용이 제작될거라는 설명을 듣지는 못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설강화가 민주화 역사를 왜곡하고 안기부를 미화할 수 있다는 많은 분들의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담당자에게 바로 협찬 철회를 요청했다”며 “철회는 바로 적용이 되었으나 화면에 노출되는 로고는 12회까지 편집이 완료되어 바로 수정이 어렵다고 한다. 역사왜곡이 될 수도 있는 드라마 제작에 제품을 협찬한 점 정말 죄송하다”고 했다.
패션 브랜드 ‘가니송’ 측도 “역사 왜곡으로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본사는 협찬 요청 당시 드라마 대본이나 시놉시스를 사전에 고지 받은 적이 없다”며 “의상팀으로부터 ‘블랙핑크 지수씨가 1980년대 인기 많은 대학생 설정으로 출연한다. 감독님 전 작품으로는 스카이캐슬이 있다’는 내용만 전달받았다. 연예인 유가협찬(비용이 발생하는 협찬)을 진행한 적이 전무하며 금전적인 이득을 취한 바도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제작진에게 관련 내용 삭제를 요청했다. 사전제작 드라마이다보니 제품 노출을 완전히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으나 최대한 노출을 막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며 “꼼꼼한 사전조사 없이 협찬에 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저희 쪽 불찰이다. 이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협찬을 진행하겠다”고 사과했다.
기능성차 전문 브랜드 ‘티젠’은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직접적인 제작협찬이 아닌 채널에 편성된 단순 광고 노출이었으나 해당 이슈에 대해 통감하며 해당 시간대 광고를 중단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협찬사 ‘도평요’와 ‘한스전자’ 측도 “협찬사 게시 중단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가구 브랜드 ‘흥일가구’는 이미 방영 전인 지난 3월 협찬 철회를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는 이같은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기업 측에는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20일 조선닷컴과 통화에서 “이유가 논리적이고 타당하면 불매운동 움직임이 동력을 얻어 더욱 확산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전 국민이 불매운동에 동참하지는 않더라도 매출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더 중요하게는 불매운동 논란에 오르내렸다는 자체가 기업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일 수 있다”며 “실질적으로 불매가 됐는지 안 됐는지 여부는 두 번째 문제”라고 했다.
한편 설강화는 1987년 서울 한 여자대학교 기숙사에 피투성이 상태로 뛰어 들어온 대학생 수호(정해인 분)와 그를 치료해준 영로(지수 분)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로, 지난 18일 첫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앞서 제작 단계에서부터 간첩활동이나 안기부를 미화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JTBC 측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80년대 군부정권 하에 간첩으로 몰려 부당하게 탄압받았던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해명했다. 또 “안기부 요원을 ‘대쪽 같다’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힘 있는 국내파트 발령도 마다하고, ‘간첩을 잡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동료들에게 환멸을 느낀 뒤 해외파트에 근무한 안기부 블랙요원이기 때문이다. 부패한 조직에 등을 돌리고 끝까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원칙주의자로 묘사된다”고 했었다.
그러나 첫방송 이후 논란이 더욱 거세지면서 방영 중지를 촉구하는 청원글도 게시됐다. 청원인은 19일 ‘드라마 설강화 방영중지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1화가 방영된 현재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은 간첩인 남주인공을 운동권으로 오인해 구해줬다. 민주화운동 당시 근거 없이 간첩으로 몰려서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운동권 피해자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건 분명히 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또 배경음악으로 ‘솔아 푸르른 솔아’가 사용된 것에 대해서도 “이 노랜 민주화운동 당시 학생운동 때 사용됐던 노래이며, 민주화운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승리를 역설하는 노래”라며 “그런 노래를 1980년대 안기부를 연기한 사람과 간첩을 연기하는 사람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 자체가 용인될 수 없는 행위”라고 했다.
청원인은 “해당 드라마는 OTT 서비스를 통해 세계 각 국에서 시청할 수 있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기에 더욱 방영을 강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해당 청원은 게시된 당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 답변 기준을 충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