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에서 나온 과거시험 답안지 /연합뉴스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뒷면에서 1840년 과거시험 답안지가 무더기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창덕궁 인정전 뒤 ‘일월오봉도’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병풍 틀에 여러 겹으로 포개어 붙어있는 과거시험 답안지인 ‘시권’ 27장을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일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병풍 보존처리 과정에서 뒷면에 붙어 있던 1840년 과거시험 답안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일월오봉도는 음양을 상징하는 해와 달, 오행을 뜻하는 다섯 산봉우리가 그려져 있으며 파도, 폭포, 네그루의 소나무가 좌우 대칭으로 배치된 회화다. 왕의 권위를 상징해 어좌 뒤에 설치된다. 인정전 어좌 뒤의 일월오봉도는 4폭 병풍으로 크기는 가로 436㎝·세로 241㎝다. 1964년 이후 다섯 차례 보수했지만, 화면이 파손되거나 안료가 들뜨고 병풍 틀이 틀어지자 국립문화재 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창덕궁 '일월오봉도' 뒷면서 발견된 1840년 과거시험 답안지/ 연합뉴스

연구소는 병풍 틀에서 화면을 떼어내면서 시권과 1963년 신문지가 겹쳐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발견된 시권은 탈락자들이 작성한 낙폭지로 나타났다. 조선시대에는 과거에 합격한 응시자에게는 시권을 돌려주고 불합격한 시권은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신문지는 1960년대 보수 때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27장의 시권 중 25장은 1840년 시행된 식년감시초시의 답안지로 밝혀졌다. 식년시는 3년마다 치른 정기 시험이고, 감시초시는 생원시와 진사시를 뜻한다. 생원시 과목은 사서의(四書疑)와 오경의(五經義)였고, 진사시에선 시(時)와 부(賦)가 출제됐다.

윤선영 고려대 한자한문연구소 연구교수는 “식년시 응시자는 자비로 과거시험 종이를 마련해야 했고, 권력 가문 자제들이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좋은 시지를 가져오는 폐습이 생기자 두꺼운 종이 지참을 금지했다”며 “1840년 즈음 시권은 대부분 두껍지 않고 고급 품질 종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또 왕실에서조차 시권을 재활용했을 만큼, 조선 후기에는 종이 물자가 부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시험 탈락자들의 답안지는 어땠을까. 생원시의 경우 중국 주자서를 무조건 답안에 작성해야 한다. 윤 교수는 “좋은 평가를 받은 답안은 주자서를 인용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튼튼하게 전개한다”며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과거시험 응시자 수가 늘고 평균 수준이 떨어지는데, 이들 답안은 대부분 주자서를 인용만 하거나 뒤로 갈수록 중언부언하는 경향을 띤다”고 했다. 다만 이번 일월오봉도에서 발견된 낙폭지들은 온전히 보관되지 않아 이 같은 경향에 부합하는 지는 단정하기 어렵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