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약 먹기가 꺼려지고 먹던 약을 끊기도 한다. 배 속의 아이가 걱정돼서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약을 사용해야 하는 임신부도 있고 약이 없으면 불편감이 심해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임신 중 약 복용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수정 12일 전엔 거의 영향 없어
약에 의한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는 임신 10주 이전이며 그 이후 위험이 점점 줄어든다. 임신부와 태아 사이의 혈관은 수정되고 12일째 만들어져 약물이 배아에게 쉽게 넘어갈 수 있게 된다. 반감기가 길어 오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약을 제외하면, 수정되고 12일 이전에 먹는 약은 거의 위험하지 않다.
약은 태아의 기형을 일으킬 수 있지만 전체 기형에서 차지하는 원인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약에 의한 기형 연구는 기형 발생과의 관련성은 말할 수 있지만 원인 결과 관계를 밝힐 수는 없다. 임신 중 가능하면 약을 안 먹어야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약을 먹지 않겠다’는 것도 잘못된 태도다. 임신 중 약을 적절히 사용하면 태아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훨씬 편하게 지낼 수 있다.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약도 많다. 대표적으로 제산제를 비롯한 소화제, 진통제, 알레르기를 억제하는 항히스타민제 등이다. 다만 아스피린과 브루펜 등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태아의 동맥관을 좁게 할 수 있어 임신 3삼분기(임신 기간 중 후반 3분의 1)에는 타이레놀을 권장한다. 어린이용 아스피린(60~150㎎)을 먹는 경우도 많은데, 이 용량으로는 동맥관이 좁아지지 않지만 혈소판 기능에 영향을 미쳐 출혈성 경향을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수술 예정이면 적어도 3일, 가능하면 7일 전에 복용을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페니실린과 세팔로스포린 계통의 항생제는 태아에게 해롭지 않아 사용할 수 있다. 항생제 가운데 클로람페니콜, 임신 중기 이후 테트라사이클린은 사용하지 않는다. B형 간염 치료제인 비리어드와 헤르페스 치료제인 아시클로버도 임신 중 사용할 수 있다. 단, C형 간염치료제인 리바비린은 임신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미리 끊어야 한다. 무좀 등 진균(곰팡이균)에 사용하는 약들도 대부분 해롭지 않다. 특히 바르는 약은 태아에게 넘어가는 용량이 미미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드름 치료제 금물, 혈압약은 주의
여드름 치료제로 쓰는 아큐테인·로아큐탄·이소티논은 유산과 태아 기형을 일으키기 때문에 절대 사용하면 안 된다. 복용 1개월 전부터 복용이 끝난 후 3개월까지 철저하게 피임해야 한다. 갑상샘암 치료에 사용하는 방사성요오드도 아이의 암 위험도를 높이므로 사용해선 안 된다. 대부분의 항암제는 임신 중에 사용하지 않지만, 일부 항암제는 임신 16주 이후 사용하기도 한다.
혈압약을 먹고 있다면 임신 전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대부분의 고혈압 치료제는 태아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기형은 일으키지 않아 조심하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고혈압 치료제 가운데 안지오텐신 전환 효소 억제제와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는 태아의 신장 발달에 영향을 줘 양수 감소, 폐형성부전(폐의 불완전한 성장)을 일으킨다.
이 약은 임신 초기보다 신장이 발달하는 임신 2삼분기 이후가 더 위험하다. 임신인 줄 모르고 복용했다면 이른 시기에 다른 약으로 바꾸면 된다. 상품명은 캅토프릴·에나라프릴·라미프릴·코자·디오반 등이 있다.
간질이 있으면 임신 중에도 항경련제를 복용해야 한다. 기형 발생 위험이 가장 높은 약은 발프로산(데파킨·오르필)이고 페니토인·테그레톨 등의 순서로 낮아진다. 발프로산을 먹은 임신부 중 15%에서 기형이 생겼지만 85%에서는 정상 신생아를 분만했다. 라믹탈·토파맥스·케프라 등은 기형 발생률이 거의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항경련제를 먹는 임신부는 엽산을 함께 복용해야 한다.
우울증이나 조현병으로 약을 먹는 여성은 임신 중에도 복용해야 한다. 다행히 대부분 약이 태아 기형과의 관련성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임신 중 약의 사용과 중단은 약을 처방하는 의사, 산부인과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