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을 현장에서 생중계한 송승환(오른쪽) 감독. 평창부터 도쿄, 베이징까지 최근 한중일 올림픽을 연출자 또는 해설자로 모두 경험했다. 시각장애 4급이라 대형 모니터가 앞에 놓여 있다. 왼쪽은 KBS 이재후 캐스터. /송승환 제공

“경기장 전체를 LED로 덮은 것은 중국다운 스케일이었다. 하지만 기술은 수단일 뿐이고 스토리텔링과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이번 개회식은 그게 약해 감동이 작았다. 성화 점화도 너무 단순해 ‘와우 포인트(wow point·감탄사가 나오는 볼거리)’가 되지 못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지내고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간 송승환(65) KBS 해설위원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이 개회식에서 영상미를 보여줬지만 성화 점화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 속이 불편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5일 국제전화에서 송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회식과 비교하면 이번엔 빨간색과 황금색이 사라지면서 글로벌 보편성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보였다”면서도 “중국은 글로벌 콘텐츠를 가지고 있지 않아 시각적 연출에 더 집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이머우에게는 개회식 연출이 두 번째인데 어떤 고충이 컸을까.

“2008년에는 중국 굴기(起), 즉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부상한다는 걸 보여주려고 중국 고대 문명부터 모든 문화를 아우르겠다는 욕심이 강했다. 이제는 G2로 자리를 잡았으니 국수주의에 가까운 국가 색깔은 숨기고 글로벌한 보편성에 다가갈 방법을 고민했을 것이다.”

–‘와우 포인트’가 전혀 없었나?

“24절기 등을 표현한 시각적 연출은 즐거웠다. 어린이 600명이 비둘기 모양 눈송이를 들고 움직일 때 사용한 라이브 모션 캡처 기술도 신선했다. 하지만 얼음을 깨서 오륜이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면 ‘와우 포인트’가 없었다.”

–하이라이트는 성화 점화인데.

“전례 없이 파격적인 방식이라고 해 기대했는데 좀 허탈했다. (탄소섬유로 제작된 성화봉으로) 친환경을 강조했지만 시각적으로 두드러지진 않았다. 무협 영화처럼 와이어를 타고 허공을 가로지른 2008년과 견주어 보라. ‘와우’가 필요한 대목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중국 크로스컨트리 디니걸 이라무장과 노르딕 복합 선수 자오자원이 성화를 점화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화려하지만 속이 비어 있다는 인상도 받았다.

“과거에 중국이 자기 색깔을 보이는 데 급급했다면 이번엔 눈과 얼음, 동계 스포츠에 집중하는 여유가 느껴졌다. 글로벌 보편성은 세계인이 그 상황을 인지하고 감동받을 때 가능한데, 중국에는 K팝이나 K드라마처럼 국제 경쟁력이 있는 콘텐츠가 없다. 그래서 눈이라도 즐겁게 하는 쪽에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평창에서는 ‘다섯 아이의 모험’이라는 스토리를 가져갔다는데 이번 개회식은 우리가 눈송이처럼 문화도 언어도 다르지만 함께 모여 아름다운 겨울을 빚어낸다는 ‘눈송이 이야기’였다.

“동계올림픽이라 눈과 얼음이라는 소재에 집중했고 그런 퍼포먼스를 펼쳤지만 그것이 스토리로 연결된다는 느낌은 못 받았다. 감동의 폭이 그래서 좁았던 것 같다.”

–한·중·일 3연속 올림픽을 다 경험했는데 개회식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면.

“팔이 안으로 굽을 테고(웃음) 우리가 이룬 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평창은 창의력, 기술과 인문의 융합, 전통과 현대의 조화 등을 잘 살려냈다고 자평한다. 평창이 1등, 베이징이 2등, 도쿄가 3등이다.”

–우리가 일본·중국보다 문화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평창은 3국 중 예산이 가장 작았다. 하지만 창의력은 두 나라보다 앞섰다.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또 우리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래도 올림픽인데...’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힘을 모았다. 나는 그 저력을 경험했다. 도쿄와 베이징을 비교하면 창의성에서 일본은 늙어가고 있고, 중국은 젊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일본은 과거에 있던 걸 꺼내 모자이크한 느낌이었고 베이징은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송승환(왼쪽) 감독이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냐오차오'를 배경으로 서 있다. 송 감독은 "나와 올림픽과의 인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며 "건강도 장담할 수 없고 2024 파리올림픽에 해설자로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송승환 제공

–중국 입국할 때 곤욕을 치렀다고 들었다.

“눈이 불편해 베이징 공항에서 휠체어 서비스를 요청했는데 코로나를 핑계로 불가 통보를 받았다. 개회식 중계방송은 부스가 없어 전 세계 미디어들이 야외에서 덜덜 떨면서 했다. 중국은 배려가 부족한 나라다. 경제적으론 강국이라지만 사회 시스템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는 TV 화면에 잡힌 것만 봤는데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는 또 좀 달랐을 것 같다.

“여기 시간으로 오후 8시에 개회식인데 오후 6시부터 입장을 통제했다. 굉장히 삼엄했다. 방역 때문이겠지만 외국인과 자국민의 접촉을 막으려는 의도도 보인다. 숙소에서 룸서비스로 조식을 주문하면 로보트가 가지고 올 정도다. (대기오염에 대해 묻자) 나는 시력 때문에 맑아도 다 뿌옇게 보인다. 하하.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서울 하늘만큼 맑다고 하더라.”

–평창올림픽은 영광과 상처(실명 위기)를 동시에 안겼는데.

“그래도 내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고 ‘내려놓음’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이번 개회식 방송 끝내고 KBS에서 ‘시청률(9.9%) 잘 나왔다’ 하고 단톡방에 지인들과 평창 스태프들이 좋은 글을 올려준 걸 읽었다. 나도 평범하다. 그런 반응 보며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