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인터뷰에서 아내인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가 남편의 머리를 감싸 안자, 랑랑은 “내 얼굴이 더 작게 나와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랑랑은 살며시 왼손 약지(藥指)의 결혼반지를 들어 보였다. /박상훈 기자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중국 인기 피아니스트 랑랑(郞朗·39)의 리사이틀. 본공연이 끝난 뒤 무대 위에 나온 ‘깜짝 손님’이 있었다. 그의 아내인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27)였다.

이날 지나 앨리스는 또박또박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고 말한 뒤 한국 동요 ‘엄마야 누나야’를 앙코르로 연주했다. 아내가 연주하는 내내, 랑랑은 무대 뒤편에서 지그시 지켜보았다. 뒤이어 남편은 중국 민요를 연주하며 화답했다. 둘은 건반 앞에 나란히 앉아서 연탄(連彈)으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과 왈츠도 들려줬다. 지나 앨리스가 한국 관객들 앞에서 연주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다음 날 서울 강남의 숙소에서 이들 부부를 만났다.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지나 앨리스의 외가는 서울이다. 지금도 외삼촌 두 분은 서울에 산다. 이 때문에 어릴 적 거의 매년 한국을 찾았다. 독일어·영어·중국어·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인사동과 삼청동 골목을 걷는 걸 즐기고 임재범과 케이윌의 가요 발라드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배웠던 한국 동요들을 지난해 낳은 첫 아들에게도 들려준다. 인터뷰 도중에 지나 앨리스가 ‘산토끼’ ‘뽀뽀뽀’ 같은 한국 노래들을 부르자, 곁에 있던 랑랑도 따라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랑랑은 “우리 아들이 나보다 한국어가 낫다”며 웃었다.

지나 앨리스 역시 네 살 적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18세에는 베를린 필과 멘델스존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이들은 201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처음 만났다. 랑랑은 “독일 TV 프로듀서인 장인 어른과 방송 인터뷰 때문에 훨씬 이전에 만났다. 그분의 딸이 아내가 될 줄은 몰랐지만…”이라고 말했다.

23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랑랑의 독주회. 본공연이 끝난 뒤 랑랑과 지나 앨리스는 피아노에 나란히 앉아서 브람스의 곡을 함께 연주했다. 마스트미디어

랑랑은 2017년 왼쪽 손목 건염(腱炎) 때문에 1년간 연주 활동을 쉰 적이 있다. 당시 독일에서 이들은 자주 만났고, 2019년 초여름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랑랑은 “연애할 적에는 달리기와 운동을 열심히 해서 몸무게가 줄었는데, 결혼한 뒤 고스란히 다시 돌아왔다”며 웃었다.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지나 앨리스가 첫 피아노 음반을 녹음할 당시, 남편 랑랑도 프로듀서로 참여해서 2주 내내 곁을 지켰다. 앙코르로 들려준 브람스의 두 곡도 녹음 당시 함께 연주했던 곡이다. 혹시 잔소리나 부부 싸움은 없었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이들 부부는 “전혀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디즈니 히트곡들을 녹음한 랑랑의 새 음반에는 아내가 가수로 참여해서 ‘피노키오’의 주제가인 ‘별에 소원을 빌 때(When You Wish Upon a Star)’를 불렀다. 랑랑은 “아내가 피아노 연주뿐 아니라 노래와 작곡 실력도 좋다”고 자랑했다.

내년에도 이들 부부는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지휘 구스타보 두다멜)과 프랑스 작곡가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함께 녹음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부부 합동 콘서트를 갖는 것이 다음 계획. 랑랑이 음악 교육을 위해 미국·유럽·중국에 설립한 음악 재단을 한국에도 여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다. 랑랑은 “임동혁·선우예권·조성진 같은 피아니스트뿐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까지 한국 젊은 연주자들의 실력과 열정이 놀랍다”며 “아시아 차세대 연주자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