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력의 삼총사가 다시 뭉친다. 극작가 한정석(39), 작곡가 이선영(39), 연출가 박소영(41).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레드북’을 합작한 ‘한이박 트리오’다. 대중과 평단이 신뢰하는 창작 뮤지컬 최고의 성공 패키지. 한이박 트리오의 신작 ‘쇼맨’이 29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한다.
2013년 초연한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6·25전쟁 중 무인도에 표류한 군인들을 그린 판타지로 배우 박해수·진선규·고은성 등이 거쳐간 흥행작이다. 2018년 초연한 ‘레드북’은 보수적이던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차지연·아이비 등이 도발적인 여성 작가 안나를 연기했고, 한정석에겐 차범석희곡상을 안겼다. 지난 7일 한이박 트리오를 만나 뮤지컬 ‘쇼맨’을 염탐했다.
◇이번엔 블랙코미디
‘쇼맨’은 냉소적인 젊은 여성 수아가 어느 독재자의 대역 배우였다는 노인 네불라의 화보 촬영을 맡으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네불라는 “내 진짜 모습을 남기고 싶다”며 인생 역정을 털어놓는다.
한정석: 창작의 씨앗은 김민섭의 책 ‘대리사회’였다. 우리는 사회에서 얼마만큼 주체적일 수 있을까. ‘쇼맨’은 가상의 독재국가와 독재자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했다. 전작들이 밝고 유쾌했다면 이 작품은 무겁고 불편하고 풍자적이다.
이선영: 네불라가 부르는 첫 노래 ‘인생은 내 키만큼’은 가지 않은 길, 인생의 다른 선택에 대해 들려준다. 누구나 자기만의 짐이 있다. 억울함과 죄책감 사이 어디쯤에 있는 감정을 건드린다.
박소영: 관객이 질문을 많이 할 수 있는 뮤지컬이다. 한정석·이선영 작품에 일관된 인류애도 들어 있다. 하지만 전작들과 달리 관객도 생각의 에너지를 좀 써야 한다. 첫인상이 어려울 수 있지만 그 문턱만 넘으면 매력적이다.
◇노래 ‘이것은 쇼’를 기대하라
한정석·이선영·박소영은 2007년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 각자 습작기를 보내다 2011년 한정석이 쓴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 이선영이 곡을 붙이고 박소영이 연출을 맡으면서 한이박 트리오가 탄생했다. 약속을 따로 하진 않지만 통화로 의견을 나누다 결국 참여하는 식이다. 이선영과 박소영은 작업실도 공유한다.
이선영: 박소영 연출과는 이번이 다섯 번째 작업이다. 일상 이야기를 하다 곧장 작품 이야기로 건너갈 수 있다. 서로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는 관계다. 동갑인 한정석과는 초반에 많이 투닥거렸는데 이제 자잘한 것 가지곤 안 싸운다(웃음). 한정석은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戰友)다.
한정석: 이야기는 내가 짓지만 음악을 만나며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해야 그럴 듯한 곡이 나온다. 변화와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이번엔 상업성이나 관객을 신경 쓰기보다 내 목소리에 더 집중했다. ‘쇼맨’이 좀 낯선 주제여도 장기적으론 보편적 공감을 얻을 거라고 믿는다.
박소영: 손발이 맞는 창작자가 있다는 건 행운이다. 한정석은 낙관적이고 이선영은 비관적이지만 그래서 균형감이 생긴다. 둘 다 성실한 노력파라 나를 더 채찍질하게 만든다. 이번 뮤지컬에선 ‘이것은 쇼’를 부르는 장면이 멋지게 나올 것 같다.
◇내게는 최고의 파트너
이들은 “뮤지컬을 계속하는 한 한이박 트리오는 유지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정석: 내게 이선영은 넘어야 할 허들이자 기준이다. 이 두 사람이 없으면 뮤지컬을 안 할 것 같다. (이선영·박소영이 박장대소하자) 아, 위험한 발언이니 정정한다. 이선영·박소영은 내가 뮤지컬을 하도록 기운을 주는 예술가들이다.
박소영: 내게 두 사람은 최고의 파트너고 존경하는 멘토다. 시간이 쌓일수록 실망하는 관계도 있는데 이들은 정반대로 더 신뢰하게 된다.
이선영: 뮤지컬 작곡은 끝을 알 수 없는 마라톤 같아서 힘들 때가 많다. 박소영은 난코스마저 깔깔거리며 통과하게 해주는 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