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강수연씨가 7일 별세했다. /연합뉴스

원조 ‘월드 스타’ 배우 강수연(56)이 7일 오후 3시쯤 별세했다. 강수연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뒤 사흘째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세 살 때 아역 배우로 데뷔한 고인은 1980년대 드라마 ‘고교생 일기’로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꼽혔다. 1990년대에도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길’(1992), ‘그대 안의 블루’(1993) 등 수많은 흥행작을 냈다. 이 영화들로 대종상영화제·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국내외 영화제·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만 10차례에 달한다.

1987년 12월 제26회 대종상 영화제 남녀주연상을 차지한 이영하와 강수연. /연합뉴스

강수연은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월드 스타였다.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출연작 ‘씨받이’가 그 어려운 본선에 오른 것만도 영광인데 기대도 못한 엄청난 행운이 안겨져 벼락 맞은 것처럼 얼떨떨하다”며 “경험이 없어 어려움도 많았지만 온몸으로 부딪치는 연기를 했다”고 했다. 비구니 연기를 위해 삭발을 감행했던 임 감독의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로도 1989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런 치열한 연기 근성 때문에 ‘독종’으로 불렸다.

2007년 10월 '아시아 연기자 네트워크' 결성을 위해 안성기 강수연 박중훈(사진 오른쪽부터)이 모였다/주완중 기자

강수연은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영화에도 다수 출연했다.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부단장을 맡으면서 미국의 통상압력에 맞서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2001년에는 SBS TV ‘여인천하’로 정난정 역을 맡으며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그해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

영화 처녀들의 저녁식사

강수연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말로도 유명하다. 돈에 휘둘리지 말고 영화인으로서 자긍심을 지키자는 뜻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한 영화인 모임에서 강수연이 한 이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영화 ‘베테랑’에서 사용했다. ‘베테랑’에서 서도철(황정민)은 돈을 받고 청탁을 하는 동료 형사를 향해 이 대사를 날렸다.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으로 참여했고 2015~2017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최근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정이’에서 주연을 맡아서 영화계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부산에서 강수연을 만났을 때 ‘당신이 우리를 현장에서 죽게 만들어줘야 해’라고 말했는데, 너무 이르다. 너무 빠르다‘”며 “강수연은 영원한 영화인으로 하늘의 별이 되었다”고 애도했다.

영화 씨받이의 한 장면

장례는 영화인장(위원장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으로 치른다. 영화인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신영균, 안성기, 이우석, 임권택, 정지영, 정진우, 황기성(가나다 순)씨가 고문을 맡는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