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구는 “연극 연기는 덧없이 사라져 허망하다"면서도 "그날 관객과 나만 아는 것이라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원로 배우 신구(86)는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자 선정 소식에 “다 늦게?”라며 허허 웃었다. 왜 이제야 주냐는 뜻이냐고 묻자 “연극에 전념해야만 받을 수 있는 상 같아서 오래전에 마음을 접었다”며 “준다고 할 때 고맙게 받겠다”고 했다.

“1970년대 초 국립극단 시절에 이해랑 선생이 연출한 연극을 몇 편 했어요. 내 결혼식 주례도 서주셨지. 연기의 바탕이 된 가르침을 받고 결혼 생활 잘하는 법도 알려주셨는데 이렇게 상까지 주시네(웃음).”

신구는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파우스트’ ‘라스트 세션’ 등 스스로 꼽은 대표작을 포함해 출연작은 200편이 넘는다. 지난 60년 동안 소처럼 일했고 지금도 현역 배우다.

그는 KBS 특채로 탤런트가 됐다. 데뷔해 10년 넘게 연극을 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출연료 얘기는 꺼낼 수도 없는 시절이었다. “공연이 잘 돼 거마비(교통비)라도 챙겨주면 감지덕지했어요. 집에 어머니와 둘이 사는데 매일 아침 나오면서 버스비 달라 하기도 그렇고. 주변 형편이 빤한데 어머니인들 어디 가서 늙은 자식 교통비를 구하겠어요. 돌파구가 필요했지요.”

방송 진출을 누구보다 어머니가 반겼다. 그리 옮겨서도 한참 뒤에야 용돈을 드릴 수 있었다. 신구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위로 누이 둘, 아래로 누이 둘, 내가 외아들”이라며 “어머니는 말년에 ‘아이고, 이제 아들이 먹고살겠구나’ 싶을 때 가셨는데 내가 불효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으로 시작한 배우는 방송에서 아무리 일이 많아도 연극이 늘 그립다”며 “관객을 직접 만나고 막이 오르면 멈출 수가 없는 게 매력”이라고 했다. 8월에는 영화가 원작인 연극 ‘두 교황’을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배우 정동환·남명렬도 함께 출연할 예정이다.

신구가 8월에 공연할 연극 '두 교황' /에이콤

본명은 신순기. ‘신구’는 동랑 유치진이 지어준 예명이다. 그는 “딴 생각 말고 길게 배우를 하라고 오랠 구(久)를 붙여주신 모양”이라며 “우유부단하고 내성적인 성격이고 평생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완전히 다른 나’로 무대에 설 때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1974년 ‘활화산’, 1975년 ‘징비록’ 등에 출연할 때 이해랑이 연출가였다. “이해랑 선생은 맥주를 조금씩 드시면서 연습을 지휘하셨어요. 출중한 배우 출신이라 답답하면 직접 시연도 하시고(웃음). 그런 모습에서 진실하게, 배역을 살듯이 하는 연기를 익혔을 거요.”

신구는 대사가 입에 붙어 물 흐르듯 흘러야 만족한다는 완벽주의자다. 이날 인터뷰에는 손흥민과 박세리, 김연아도 잠깐 소환됐다. 60년을 해도 연기는 매번 새롭고 어렵다고 말할 때였다.

“손흥민은 아버지와 함께 하루에 슈팅을 1000번씩 했고 박세리는 밤에 공동묘지에 가서 담력을 키웠고 김연아는 어릴 때부터 그 어려운 피겨 스케이팅을 견뎌냈잖아요. 배우도 노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어요. 여러 가지 경험을 골고루 섭취하고 감정도 다양하게 느껴봐야 연기가 나옵니다. 바탕에는 진실이 있어야 해요. 연기에 진실이 없으면 공허해져.”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원로 배우 신구 /고운호 기자

배우란 이 배역 저 배역 세들어 사는 존재다. 지나온 인물 중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스탠리(영화에서 말런 브랜도가 연기했다)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거칠고 동물적이고 복수심을 지닌 사내다. 신구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색깔이라 선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후배 배우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그가 말을 이었다.

“어느 분야든 ‘10년은 묵혀라’라는 말이 있어요. 그래야 싹이 트지. 그 시간을 못 참고 들락날락하면 결실도 없어요. 조급한 사람은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는 게 좋아. 나도 30대 후반까지는 바닥에서 고생하며 보냈어요. 재능이 있다면 견디고 기다립시다. 배우로 숙성되는 시간을.”

연극 '라스트 세션'의 프로이트 박사 신구. /파크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