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벨기에 다큐멘터리 감독 티에리 로로(64)가 그런 눈을 가진 경우다. 피아니스트 조성진·문지영,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소프라노 황수미 등 세계적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둔 20~30대 한국 음악인들의 돌풍을 다룬 다큐멘터리 ‘K클래식 제너레이션’의 국내 개봉(31일)을 앞두고 최근 방한했다. 그는 26일 인터뷰에서 “지난 10여 년간 한국 음악계가 보여준 변화는 그야말로 혁명적”이라며 “세계 클래식의 미래 가운데 일부는 분명 한국의 몫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혹시 과찬이나 공치사는 아닐까. 그는 “지난 12개월 동안 몬트리올·부조니·퀸 엘리자베스·반 클라이번 등 4대 대회에서 우승한 연주자들이 모두 한국인이며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라고 주문했다. 그의 말처럼 지난해 몬트리올 콩쿠르(피아니스트 김수연), 부조니 콩쿠르(박재홍), 올해 반 클라이번 콩쿠르(임윤찬)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첼로 최하영) 우승자들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산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공부한 뒤 한예종에 진학하거나 유학을 떠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에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연주자들이 테크닉만 뛰어날 뿐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최근 등장한 ‘K클래식’ 세대는 열정과 본능, 에너지와 표현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가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로로 감독은 브뤼셀 음악원에서 오보에와 음악학을 전공한 전문 연주자 출신. 벨기에 공영방송 RTBF 소속으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현장 중계만 26년째 맡고 있다. 투츠 틸레만(하모니카) 같은 세계적 음악인에 대한 다큐도 40여 편을 연출했다. 한국 음악계의 부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0년 무렵이다. 그때부터 한국 음악인들을 만나고 브뤼셀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2012년 다큐인 ‘한국 클래식의 수수께끼’다. 이번 ‘K클래식 제너레이션’은 후속편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번이 17번째 방한. 로로 감독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로로 감독은 K클래식 돌풍의 비결로 체계적인 영재 교육 시스템, 연주자들의 재능과 열정, 부모들의 헌신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철저하게 자율에 맡기는 유럽과 달리, 한국은 18~19세까지 테크닉과 두뇌, 상상력과 기억력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적 지상주의나 순위 경쟁은 학생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로로 감독도 “혹독한 연습, 지나친 간섭과 통제 같은 어두운 그늘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번 다큐에서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모든 방식이 옳을 수는 없지만 비판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향후 ‘K클래식 3부’도 나올까. 그는 “지금 속도라면 조만간 10여 개 콩쿠르에서 또다시 한국 우승자들이 쏟아질 것 같다. 그때쯤 다시 만들고 싶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