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입마개 시절을 뚫고 온 응모작들 앞에 문학의 일이 새삼 짚인다. 팬데믹에 가중된 현실적 압박들이 쓰기의 궁리를 더 다양하게 불러낸 듯하다. 그런 고투의 발화들 중에도 자신만의 시적 발명을 펼쳐갈 법한 확장 가능성에 비중을 두며 응모작들을 거듭 읽었다.

고심 끝에 가려낸 당선작은 ‘백련의 기억’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회색인’ ‘석류가 비명을 지를 때’ ‘MBTI’ ‘신림역에서’ ‘바람의 일’ 등이었다. ‘회색인’은 현대 도시인의 일상 속 실존 탐색이, ‘석류가 비명을 지를 때’는 당대의 외곽과 소외를 읽는 문제의식이, ‘MBTI’는 청춘들의 현실과 정형의 조화가, ‘신림역에서’는 지금 이곳의 실상 묘사가, ‘바람의 일’은 소소한 발견을 여미는 보법이 돋보였다. 하지만 동봉한 작품들을 다시 읽는 동안 엇비슷한 인식이나 발상 그리고 진술의 과잉 같은 면들이 걸렸다. 다른 작품에서도 정형성의 구조화를 균질감 있게 보여준 ‘백련의 기억’이 살아남게 된 연유다.

‘백련의 기억’은 명징한 이미지와 묘사의 정제가 오롯하다. 참신한 비유들은 ‘백련’이라는 낯익은 대상에도 단아한 새로움을 발생시킨다. ‘희미한 표정만 남긴 채 수척해진 문장들’에 아취와 생기를 부여하는 힘이다. 정형의 전제인 구(句)와 장(章)을 네 마디 율로 아우르는 정공법에 충실한 운용임에도 환한 생기와 여운을 일으킨다. ‘꽃순’에서 ‘차랑차랑’ 나아가는 노래의 감응으로 ‘백련’의 눈부심을 더 오붓이 열었다. 다만 너무 익은 서정의 느낌은 오늘의 감각으로 쇄신해가길, 바람을 덧붙인다.

유진수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아울러 응모자들의 새로운 시적 영토의 확장을 기대한다.

정수자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