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지~.”
또 눈을 치켜뜨며 “증거 있냐”고 얼굴을 들이미는 학폭 가해자 ‘박연진’(임지연)에게 ‘문동은’(송혜교)이 말한다. 가해자를 무너뜨리는 순간, 연진의 면전에다 이 말을 해 줄 날을 동은은 18년, 시청자들은 (파트1 끝난 뒤) 석 달이나 기다려야 했다.
동은의 복수가 마침내 끝을 보게 됐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2는 지난 10일 오후 5시(한국 시각) 공개 하루 만에 시리즈 순위 세계 3위(플릭스패트롤 기준)에 올랐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홍콩, 대만,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시아·남미·중동 국가를 중심으로 26국에서 1위다. 2위를 차지한 나라는 13국, 3위는 11국에 달한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최대 시장인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3위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순위는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파트2 전편(全篇) 공개 뒤 온라인에는 “새벽까지 한 번에 달렸다” “사이다가 콸콸콸 쏟아지다 못해 아주 수영장” 등 호평이 많았다. “내가 봐도 너무 잘 썼다”는 김은숙 작가의 흔치 않은 ‘자찬’은 허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동은의 복수는 빈틈없이 아귀를 맞춰 나가고, 가해자와 그 조력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징벌을 받는다. 가해자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돈과 힘은 종이로 지은 집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허물어져 내린다. 상대에 대한 자격지심이나 해묵은 원한 같은 약점이 서로의 발을 걸어 쓰러뜨린다. 불행과 폭력을 전달했던 자의 발이, 남의 슬픔을 비웃었던 자의 입이, 명예와 부를 포함해 학대와 거짓 위에 쌓아왔던 모든 것이 각자 죄의 몫에 가장 걸맞은 방식으로 처참히 부서져 나간다. 가해자들은 추락하고 또 묻힌다. 동은이 그들에게 선물한 폐허와 지옥이다.
가정 폭력 피해자이면서 동은을 돕는 ‘강현남’(염혜란) 등 상처받은 약자들의 연대가 끝내 승리를 거두는 것은 이 복수극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고교 시절 또 다른 학폭 피해자에게도 마지막 한 방을 선사할 기회가 주어지고, 차마 장례를 치르지 못한 학폭 피해 딸의 시신을 보관해왔던 어머니도 마침내 웃을 수 있게 된다.
동은의 월세집 주인 할머니로 출연한 배우 손숙과 과거 동은과의 인연도 밝혀진다. 특히 회상 장면에서 그가 어린 동은에게 말하는 “물이 너무 차다. 우리 봄에 죽자 응? 봄에”라는 대사는 김은숙 작가 특유의 명대사들 중에서도 첫손에 꼽을 만하다. 한겨울 차가운 강물에 흠뻑 젖은 채로 상처 입은 어린 동은을 꼭 안아주며 이 말을 하는 배우가 손숙이어서, 담긴 뜻도 더 깊이있게 전해진다.
반면 파트1에서 보여준 처절한 ‘빌드업’에 비해 우연에 기대는 복수의 완성이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동은까지 악인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결정적 순간에 이어지는 우연, 딱 필요할 때 나오는 가해자들의 실수 같은 서사적 ‘점프 컷’을 피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더 글로리’의 연출자 안길호 PD는 12일 그가 필리핀 유학 중이던 고교 시절 학교 내 폭력 행사에 연루됐다는 익명 폭로 글에 대해 법무법인을 통해 “좋지 않은 일로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여자 친구가 저 때문에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타인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 상처 받으신 분들께 마음속 깊이 용서를 구하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한 한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10일 “안 PD가 필리핀에서 고교생 시절 중학생 상대 집단 폭력에 연루됐다”는 익명의 폭로 글이 올라왔으며, 학폭을 다룬 드라마의 연출자가 폭력 가해자였다는 주장이어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