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오염수 방류 가지고 그만 뭐라고 하라’는 (일본의) 글로벌 마케팅으로 보인다”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다.”

지난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데이스'. 극 중 원자력 발전소장 요시다(가운데)를 중심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현장 직원들이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인 이야기를 담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일본 드라마 ‘더 데이스’가 20일 공개된 후 오히려 ‘미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달 1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76국에 공개됐으나, 국내 방영이 늦어지자 ‘김건희 여사가 오염수 공포 확산을 우려해 드라마 공개를 막았다’는 취지의 가짜 뉴스가 양산됐던 것과는 정반대 현상이다. 이날 공개 직후 국내 영화·드라마 평점 커뮤니티엔 “오염수 방류에 대한 정당화를 호소하는 신파”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포장” 등 ‘더 데이스’의 미화를 지적하는 내용이 여럿 올라왔다. 드라마가 공개되면 후쿠시마 오염수 공포가 확산할 것이어서 정부가 막았다는 취지의 가짜 뉴스가 퍼졌지만, 실상은 오염수 공포를 키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본 도쿄전력 직원들의 영웅담이 부각돼 불편하단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 드라마는 지난달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가 일본 비디오물에만 까다로운 ‘심의’ 절차를 요구해 방영이 지연되는 것이었는데도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정부 외압설을 제기했다. 지난달 9일 민주당 확대간부회의에서 서 의원은 “76국에서 넷플릭스 상위 10위에 오른 더 데이스가 무슨 일인지 우리나라 넷플릭스에서 검색되지 않는다”며 “김건희 여사가 넷플릭스 관계자들을 만난 그날이 생각난다. 왜 넷플릭스에 이 드라마가 올라오지 않는지에 대해 우리는 한 번 더 짚어봐야 한다. 권력은 이렇게 함부로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당 안귀령 상근부대변인도 “넷플릭스의 ‘더 데이스’ 한국 비공개는 매우 수상하다”고 했다.

외압설 자체도 가짜 뉴스였지만, 공개된 드라마 내용만 보더라도 정부가 민주당이 주장하는 이유로 이 드라마에 압력을 가할 까닭은 없어 보인다. 드라마를 본 일부가 “미화”라고 느낄 정도로, 당시 현장에서 목숨 걸고 사태 수습에 나섰던 도쿄전력 직원과 자위대원 이야기가 극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2011년 3월 11일 최대 진도 7의 지진 발생 후, 최대 높이 15m의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를 한순간에 집어삼킨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하얀거탑’ ‘맨발의 겐’ 등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를 만들었던 마스모토 준 등이 제작자로 참여했고, 올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일본 국민 배우 야쿠쇼 고지가 주연을 맡았다. 제작진은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 소장 요시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요시다 조서’, 도쿄전력이 정리한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보고서’, 가도타 류쇼가 쓴 ‘죽음의 문턱을 본 남자’를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드라마는 원전 폭발 가능성이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그야말로 사투를 벌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진정성 있게 전한다. 당시 정전과 여진, 쓰나미의 공포 속에서도 도쿄전력과 협력기업의 직원 800여 명은 ‘멜트다운’을 막기 위해 원전 내부 밸브를 수동으로 여는 등 전력을 다해 사태를 수습한다. 이들마저도 철수하고 당시 ‘50인의 결사대’로 불리며 마지막까지 발전소 내에 잔류한 이들은 목숨을 걸고 더 큰 폭발을 막기 위해 원전에 남는다. “우리 가족 역시 후쿠시마에 살고 있기에” 은퇴를 앞둔 원전 기술자가 다시 현장으로 자원하는 등, 큰 뼈대는 실제 사고 당시 뉴욕타임스가 “일본을 대참사로부터 지키고 있는 영웅”이라고 소개한 그대로다.

그렇다고 원전 사고를 무조건 두둔하는 건 아니다. 실제 사건 초기 원전 관련 기관 수장에게 간 나오토 당시 총리가 “당신이 전문가 맞느냐”고 소리 지르자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고 답하는 장면, 민간 기업인 도쿄전력에만 사고 원인 파악과 수습을 맡겼다가 5일 만에야 꾸린 통합대책본부, 폭발 영상이 TV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원자력은 문제없다”고 했던 도쿄전력의 ‘일단 은폐’와 늑장 보고 등 원전 사태 수습의 총체적인 문제로 제기됐던 부분들이 고스란히 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