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리메이크한 넷플릭스 ‘너의 시간 속으로’는 대만 드라마 특유의 청량함과 귀를 자극하는 OST 등이 돋보인다. 다만 21부작이었던 원작을 12부작으로 줄이면서 주인공의 서사 등이 편집돼 원작 팬 사이에선 아쉽다는 평도 나온다. /넷플릭스

대만 청춘 멜로엔 지문이 묻어 있다. 교복 입은 청춘들의 해사함, 첫사랑의 풋풋함과 아련함, 수채화 같은 영상미와 드라마가 끝나고도 흥얼거리게 되는 OST까지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지난 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너의 시간 속으로’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장르물이 대세인 넷플릭스에서 올해 두번째로 내놓는 오리지널 로맨스물이다.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비영어 부문 TV 시리즈 4위에 올랐다. 1년 전 세상을 떠난 남자 친구를 그리워하던 준희가 운명처럼 1998년으로 타임 슬립해 남자 친구와 똑같이 생긴 시헌과 친구 인규를 만나고 겪는 미스터리 로맨스다. 전 세계 OTT 누적 10억뷰를 기록하며 ‘상친자(상견니에 미친자)’ 신드롬을 낳았던 대만 드라마 ‘상견니’를 원작으로 한다.

‘너의 시간 속으로’가 등장하기 전까지 올해 국내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 중 글로벌 TOP10에 든 멜로물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올 1월 공개된 ‘연애대전’이 유일하다. 최근까지 공개된 9작품 중 7작품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거나 서로 죽이는 등의 장르물이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상물에 지쳤거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시청자들을 파고든 게 대만 멜로물이다. 2020년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등을 통해 공개된 메가 히트작 ‘상견니’가 대표적이다. 남자 주인공 허광한은 최근 1년 새 3번 방한할 정도로 이 작품을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상견니’의 두 주인공 ‘허광한(왼쪽)’과 ‘가가연’. /WelikeTV

‘상견니’뿐 아니다. 내년엔 대만 멜로의 전성기를 연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도 리메이크된다. 배우 도경수와 원진아가 각각 주걸륜과 계륜미 역할을 맡았다. 2010년 개봉한 대만 영화 ‘청설’ 역시 최근 드라마 ‘일타스캔들’ 등에 나온 배우 노윤서를 캐스팅하고, 촬영을 진행 중이다. 최근 국내 OTT가 액션·SF·호러 등 장르물에 집중하는 사이 생긴 공백을 대만 청춘 멜로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리메이크판 주연을 맡은 배우 도경수(오른쪽)와 원진아. /쏠레어파트너스

다만 원작의 성공이 리메이크작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너의 시간 속으로’는 지금 국내에서 가장 잘나가는 두 배우(전여빈·안효섭)가 주연을 맡았음에도 ‘상친자’들을 중심으로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상견니를 따라 드라마를 너무 예쁘게만 그리려다 현실적인 부분을 놓쳐버렸다는 평이 많다.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의 한국은 물론 지금 한국의 고등학생과 비교해봐도 이질적 장면이 여럿이다. 벚꽃 핀 가로수길을 (춘추복이 아닌) 하복 입은 채 걷고, 고등학생이 크로스백을 멘 채 스쿠터 타고 등교하며, 누가 봐도 연세대 교정인 건물을 고등학교로 설정하는 등 ‘예쁨’에만 치중한 장면은 몰입을 떨어뜨린다.

공부엔 취미 없는 원작의 남자 주인공을 ‘운동도 잘하고 미술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전형적 한국적 설정으로 바꿔 놓고, 그의 40대를 지저분한 장발과 수염에 칙칙한 얼굴로 표현한 것도 원작 ‘상견니’ 팬들의 원성을 산 부분이다. 그럼에도 타임 슬립 후 처음 여자 주인공을 편의점에서 다시 만났을 때 배우 안효섭의 눈빛, 10회 이후 1인 2역을 동시에 소화해내는 배우 전여빈의 연기는 눈여겨볼 만하다. 오디션에서 감독이 보자마자 배역을 제안했다는 신예 강훈은 연기를 보면 ‘그럴 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 배우 중 전여빈만 원작을 봤고, 두 배우는 감독의 요청으로 보지 않았다고 한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3'과 '사내맞선'에 이어 '너의 시간 속으로'에서 남자 주인공 시헌 역을 맡은 배우 안효섭은 20대 대표 남자 배우로 자리매김 중이다. /넷플릭스

배우 안효섭은 드라마 공개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사람 얼굴에서 한 가지 못 바꾸는 게 눈빛이라고 생각한다”며 “나이대별로 눈빛이 다르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 인물로 들어가야 하는 거라 제일 어렵더라”고 했다. 장발 스타일링에 대해선 자신이 먼저 요청했다고 한다. “과연 10대였던 주인공이 40대가 될 때까지 온전히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타임 슬립을 통해) 모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가꾸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그렇게 디테일을 살렸다”며 “나만의 의도를 갖고 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상견니’를 보지 않은 시청자들의 반응은 원작을 본 사람들보다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