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배우 주윤발(저우룬파)이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News1 기자

“전 재산 기부요? 전 하기 싫다고 했는데, 아내가 결정한 거예요. 아니, 제가 힘들게 번 돈을 그렇게 줘버리다니.”

만면에 웃음을 띤 ‘큰형님’의 농담에 기자회견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홍콩 영화의 전설인 ‘따거(大哥·큰형님)’ 주윤발(68)은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회견에서 시종일관 유머와 여유가 넘치는 답변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장난처럼 시작했던 기부 답변을 곧바로 진지하게 이어가며 “어차피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안 갖고 왔기 때문에 갈 때 아무것도 안 갖고 가도 상관없다”면서 “제게 필요한 것은 점심·저녁 먹을 흰 쌀밥 두 그릇뿐”이라고 했다. 그는 2010년 “사후(死後)에 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8억5600만홍콩달러(약 1400억원)였던 재산은 2018년엔 56억홍콩달러(약 9600억원)로 불었다. 부동산에 밝은 아내 진회련(陳薈蓮·64)의 투자 덕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내 사랑은 각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날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때도 꽃분홍 드레스를 입은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레드카펫을 밟았다.

영화 ‘영웅본색’(1986) ‘첩혈쌍웅(1989)’ 등으로 1980·90년대 홍콩 영화 황금기를 이끌었던 그는 1973년 방송국 배우 훈련소에 입소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1974년 TV 드라마 구경꾼 역으로 출발해 영화 100여 편을 찍었다. 액션, 멜로, 코미디, 사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아시아 최고 스타가 됐다. 노점상 홀어머니와 살며 공장의 임시 직공, 우편배달부, 웨이터를 거친 인생 역정(歷程)은 2003년 홍콩 스타 최초로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홍콩 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영화 '영웅본색'(1986)에서 열연한 주윤발. 쌍권총을 휘두르며 의리를 위해 싸우는 사나이로 이후 한국 영화에도 큰 영향을 줬다. /부산국제영화제

배우 인생 50년 마음가짐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저는 수퍼스타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그야말로 보통 사람”이라며 “지금 이 자리에선 제가 스타고 여러분은 기자지만, 이 자리만 벗어나면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로도 보통 사람처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허름한 맛집을 자주 찾아 시민들의 인증샷이 인터넷에 뜨곤 한다.

이제는 ‘홍콩의 상징’이 된 그는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 학생 시위대를 공개 지지했다. 2019년 홍콩 정부가 집회·시위 때 복면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자 검은 복면을 쓰고 거리에 나와 ‘진정한 영웅본색’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럴수록 가짜 뉴스도 따라붙었다. 지난 7월엔 그가 코로나에 걸려 혼수상태라는 루머가 중국 본토 매체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는 이날 회견에서 “날마다 있는 일이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곧 홍콩 하프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라며 “이번에 부산 와서 이틀 내내 달리기를 했고, 내일 오전에도 10㎞를 뛰겠다”고 건강을 과시했다.

연기와 삶의 공통된 철학은 “현재를 살아라”. “후회하지 않아요. 해봤자 소용없는 후회 대신, 매 순간 지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도 했다. “어떤 감독이 제게 노인 역할을 하라고 한다면 기꺼이 하겠다”며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게 당연한데, 무서울 것이 없다”고 했다. 또 “제가 공부를 많이 못 했는데 영화 연기를 하며 인생을 배웠다”며 “영화가 없었으면 주윤발도 없다”고 했다.

한국과의 수십 년 인연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1980년대 한국 촬영 때 스태프들이 모두 양식 먹을 때도 전 매일 갈비탕에 김치를 먹었고, 남대문시장에서 야식으로 번데기를 사다 먹었다”고 했다.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가고 한국 영화가 뜬 경쟁력으로는 자유를 꼽았다. 그는 “홍콩 영화는 규제가 심해 어려움이 있는데, 한국 영화는 가끔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작의 자유가 풍부하다”며 “그래서인지 굉장히 좋은 작품이 많다”고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를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 수상자로 선정하고 ‘영웅본색’ ‘와호장룡’(2000)과 5년 만의 신작인 코미디 영화 ‘원 모어 찬스’(2023) 등 3편을 상영한다. 이날 오후 영화의전당 건물에 기념으로 걸어둘 핸드프린팅을 만든 주윤발은 “저의 핸드프린팅은 홍콩에도 없는 것인데, 한국을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저도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하고 연기도 계속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부지런히 운동해서 다음에 제가 부산에 오면 바닷가에서 달리기하다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