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의 담수(淡水) 위기가 미디어 아트로 재탄생했다.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미디어 아트 작가 강이연(41)이 구글,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협력해 만든 작품 ‘패시지 오브 워터(Passage of Water)’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지난달 30일 개막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공개됐다. 한국 작가가 나사와 협력해 작품을 만든 건 처음이다.
3일 새벽(현지 시각) 두바이에서 전화를 받은 강 작가는 “지금까지 건축가, 무용수 등 수많은 예술가와 협업해 왔지만, 이번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에서 토론을 거친 완벽한 협업이었다. 데이터를 함께 분석하고 어떤 데이터를 왜 써야 하는지 과학자들과 치열하게 논의했다”며 “작가로서 쌓아온 모든 역량을 다 쏟아부었다”고 했다.
시작은 지난해 10월이었다. “구글의 ‘아트 앤드 컬처’ 팀에서 지구 환경에 대한 작품을 해보자는 협업 제안이 왔다. 담수 이야기를 해보자고 논의하다가 구글과 협력 중인 나사가 마침 새롭게 발사한 위성을 사용해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이 작업이 시작됐고, 첫 미팅 때의 흥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작가는 나사의 위성 2개에서 얻은 데이터를 사용해 몰입형 미디어 아트로 만들었다. 나사가 2002년 발사한 그레이스(GRACE) 위성이 수집한 20년간의 데이터, 그리고 지난해 12월 새롭게 발사한 스왓(SWOT) 위성이 측정한 고해상도의 지구 담수 데이터다. 그는 “특히 스왓 데이터는 아직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최초로 사용한 것”이라며 “나일강, 알래스카 유콘강, 파키스탄 인더스강 등에서 최근 일어나는 심각한 기후 위기를 반영했다”고 했다.
협업이 진행된 지난 1년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구글 팀은 영국 런던, 나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패서디나, 저는 한국에 있었다”며 “새벽에 일어나면 나사 팀과 줌으로 미팅하고, 낮에는 카이스트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업을 했고, 오후 6시부터는 런던의 구글 팀과 협의를 했다. 세 대륙의 시차를 버텨내야 했다”고 했다.
작품은 회의 기간 내내 총회장 블루존의 룩셈부르크 전시관에서 단독으로 상영된다. 블루존은 각국 정상과 대표단, 기후 전문가들이 모여 기후 협상을 벌이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COP의 메인 장소. 그는 “개막 직후부터 전 세계 많은 전문가들이 찾아와 작품을 감상하고 공감해줬다”며 “데이터는 스스로 얘기할 수 없다. 나사가 수집한 데이터를 누가 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우리 모두 관심 가져야 할 주제를 쉬운 언어로 번역해 사람들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 예술의 힘”이라고 말했다.
서양화를 전공한 강이연은 “평면 캔버스의 제약에서 도망치고 싶어” 2013년 영국으로 넘어갔고,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 실내를 프로젝션 매핑으로 채우는 등의 실험을 해왔다. 지난 2020년 방탄소년단과 협업한 전시 ‘Connect, BTS’에 참여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한글 특별전에서 몰입형 미디어아트 신작 ‘문’(Gates)을 선보였다. 지난 10월에는 미국 시카고 ‘아트 온 더 마트’에 한국인 최초로 초청받아 미식축구장 두 개에 해당하는 1만㎡(약 3000평) 넓이의 건물 외벽을 그의 작품으로 뒤덮었다. 이번 작품은 12일까지 회의 기간 내내 전시되며, 구글 플랫폼(g.co/arts/uDHdZCJ8oKZrzUp47)을 통해 온라인에서도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