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고르는 일은 무척 어렵다. 마트에는 수백 종의 와인이 경쟁하듯 늘어서 있고, 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도 모두 알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프랑스 와인에 먼저 손이 간 경험이 있지 않은가?

사실 프랑스는 와인의 기원국도 아니고 현재 최대 생산국도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가 와인을 대표하게 된 데에는 유네스코의 역할도 어느 정도 있었다. 1999년 프랑스 보르도의 생테밀리옹 지역이 와인 생산지로는 처음으로 세계유산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는 샴페인으로 알려진 샹파뉴 지역과 피노누아 품종의 섬세한 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부르고뉴 지역을 목록에 올리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와인 생산국의 이미지를 굳히고자 했다.

프랑스의 성공을 본 유럽 각국 와인 산지들의 세계유산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2000년 오스트리아는 대표적 화이트 와인 생산지인 바하우 계곡을, 이듬해 포르투갈은 달콤하면서 풍미가 진한 포트와인으로 유명한 알토 도루 지역을 목록에 올렸다. 독일은 라인강 중상류 계곡 지역을 등재하며 자국 최대 와인 생산지를 홍보했고, 귀부와인(늦게 수확한 포도로 만듦)으로 유명한 헝가리의 토카이 지방도 포함되었다. 기원전 5세기경 재배한 포도의 꽃가루가 발견될 정도로 포도 재배의 역사가 긴 이탈리아는 오히려 후발 주자가 되었다. 불과 10년 전부터 피에몬테주에 있는 포도밭들과 베네토주의 프로세코 생산지를 등재했다.

전 세계 다양한 와인 산지를 생각하면 아직 대기 중인 선수가 많아 보인다. 스페인의 리오하 지역도 그중 하나다. 세계유산이 되면 지역 경제가 살아나고 수출 활로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와인 생산지는 주로 작은 마을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민들이 그 혜택을 바로 누릴 수 있다. 또한 소비자들도 더욱 다양한 와인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약간의 사심과 함께 유럽 국가들의 선의의 경쟁을 멀리서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