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70번째 레터는 강동원 주연의 영화 ‘설계자’입니다. “그 영화 어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신다면 지루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추천하기엔 애매한 영화였습니다. 매력적으로 시작하지만 흐지부지 끝이 나고, 끝까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극에 몰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보안 업체 ‘삼광보안’을 운영하는 영일(강동원)은 사고사로 위장해 살인을 대행하는 ‘설계자’입니다. 하지만 청부 살인을 의뢰받고 타겟을 처리하던 동료들이 되려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영일은 이들의 사고 역시 설계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장점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점입니다. 영일을 찾아온 의뢰인 주영선(정은채)은 자신의 아버지인 검찰총장 후보자 주성직을 사고사로 위장해 죽여 달라고 의뢰합니다. 검찰총장 후보자의 일가가 비리 의혹에 휘말리고 언론과 유튜브에선 수사과정은 물론이고 주영선의 일거수 일투족을 생중계합니다. 자연스럽게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일가족의 입시 비리와 경쟁하듯 자극적인 뉴스를 생산해내는 미디어가 연상됩니다.
설계자들보다 더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청소부’의 정체를 쫓는 과정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영일 주변의 모두를 의심하게 만들며 혼돈에 빠뜨립니다. 음모론을 펼치는 유튜버 하우저(이동휘)도 끼어들어 이야기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죠. 강동원뿐 아니라 이미숙, 김신록, 이무생 등 조연들의 연기가 탄탄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설계자들이 영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외인사연감’을 뒤적이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결과물을 보면 믿고 맡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표정은 누구보다 심각한데 작업 과정은 나사가 하나씩 빠진 듯 허술합니다. 저렇게 했다간 금방 경찰에 붙잡힐 것 같단 말이죠. 더 거대한 조직으로 설정된 청소부들이 굳이 비슷한 수법을 반복해서 허점을 남긴다는 설정도 의아합니다.
더 큰 문제는 결말인데요. 이렇게 뿌려놨던 ‘떡밥’을 허겁지겁 회수하는데, 놀랍기보다는 허탈합니다. 차근차근 복선을 쌓아 올렸다가 터뜨리는 반전이 아니라, 그저 관객을 속이는 게 목적인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느껴집니다. 설계가 치밀하지 못하고 부실했던 탓이겠죠.
이요섭 감독은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의 어려움, 수많은 정보 속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혼돈”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글쎄요. 연출 의도처럼 무기력하고 수렁에 빠진 듯 끝이 납니다. 모든 영화가 시원하고 명쾌하게 끝나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잔뜩 기대를 부풀려 놓고 바람을 빼버렸으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줘야 할 텐데 그게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끝내버리면 이 레터를 읽는 분들도 힘이 빠지겠죠? 비슷한 소재에 이름까지 닮았지만 훨씬 더 탄탄하게 설계된 김언수의 소설 ‘설계자들’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살인을 의뢰받고 시나리오를 짜는 설계자, 이를 실행에 옮기는 암살자, 시체 처리업자들이 우글대는 세계가 매력적으로 펼쳐지는 소설입니다. 읽다보면 예측할 수 없는 전개에 계속 허를 찔리는데, 킬러라면 이 정도는 영리해야 벌어먹고 살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다음엔 더 좋은 작품을 소개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은 이만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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