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신사동 거암아트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37)은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2악장 연주를 마친 뒤 정성스럽게 자신의 악기를 탁자 한복판에 올려놓았다. ‘엑스 튀니(Ex-Thunis)’로 불리는 1702년산(産)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명악기들은 예전 소유자나 연주자의 이름을 별명처럼 붙이는 경우가 많다. 클라라 주미 강은 지난해 여름부터 기아자동차에서 이 악기를 무상으로 대여받아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연주자들에게는 악기를 찾는 것이 숙제인데, 평소 음악회를 후원했던 기아 측에서 이 바이올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흔쾌히 허락했다”고 했다.
클라라 주미 강은 2010년 미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와 일본 센다이 콩쿠르를 동시 석권했던 인기 연주자. 하지만 그도 최소 수십억원에 이르는 명악기를 구입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특히 바이올린 제작의 ‘황금기’로 불리는 1700~1725년에 제작된 고악기들은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1721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지난 2011년 런던 경매시장에서 1590만달러(약 219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현악기 연주자들은 개인이나 기업, 문화재단에서 악기를 무상 임대 형식으로 후원받아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금호문화재단·삼성문화재단에서 자체 보유한 악기들을 젊은 차세대 연주자들에게 대여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클라라 주미 강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금호문화재단에서 대여받은 과다니니 바이올린으로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뒀다. 우승 직후에는 이 콩쿠르를 창설한 명바이올리니스트 조셉 깅골드(1909~1995)가 생전에 사용했던 168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후원받아서 4년간 연주했다. 다시 2015년부터 삼성문화재단에서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엑스 스트라우스(Ex-Strauss)’를 후원받아서 7년간 사용했다. 악기를 따라서 계속 유전(流轉)하는 악기의 ‘세입자’인 셈이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특권이다. 클라라 주미 강은 “예전에 사용했던 1708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진주처럼 반짝였다면, 이번 1702년산 악기는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남성적인 소리를 낸다”고 설명했다. 그 원석 같은 바이올린으로 그는 올여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같은 세계 유수 음악제에서 연주한 뒤 9월 초 방한 리사이틀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