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웃고, 어른들은 울고 나왔다. 전 연령대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킨 영화 ‘인사이드 아웃2′가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월트디즈니 컴퍼니는 24일(현지 시각) ‘인사이드 아웃2′가 전 세계 매출 14억6276만달러(약 2조281억원)로 ‘겨울왕국 2′를 제치고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단 기간인 19일 만에 티켓 수입 10억달러를 벌어들이며 돌풍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지난 21일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파묘’ ’범죄도시4′에 이어 올해 개봉작 중 흥행 3위에 올랐다.
가장 큰 흥행 비결은 보편성과 독창성을 동시에 잡은 스토리텔링으로 꼽힌다. 영화는 사춘기 소녀 라일리의 머릿속에 ‘불안’ ’따분’ ‘당황’ ’부럽’이라는 낯선 감정들이 들이닥치면서 시작된다. 새로운 캐릭터로 신선함을 주면서도,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 속의 상황을 감정 캐릭터들의 좌충우돌로 재해석해 전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CGV 통계에 따르면, 20·30대 비율이 큰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인사이드 아웃2′는 40대가 28.6%로 가장 높았고, 20대(26.9%), 30대(26.1%), 50대(10.2%), 10대(8.3%) 순으로 고루 분포했다.
어른들을 사로잡은 건 이 영화의 빌런이자 사실상 주인공인 ‘불안’이다. 불안은 미래를 대비해 끊임없이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밤마다 “아직 부족하다”고 속삭이며 라일리를 괴롭히는 주범이기도 하다. 불안을 안고 성장해 온 어른들은 “어른이 된다는 건 기쁨이 줄어드는 건가 봐” 같은 대사에 눈물을 훔쳤다. 1편의 감독이자 픽사의 수장인 피트 닥터는 “전 세계적으로 젊은 세대의 불안이 커지고 있었고, 유의미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불확실성이 커진 현대 사회에서 불안은 세계적인 화두가 됐다. 지난해 미국 인구조사국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28%는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고,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8.1%)에 비해 3.5배 증가한 수준이었다.
영화는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의 조언을 통해 ‘불안’을 정교하게 디자인했다. 초기에 잿빛 괴물로 설정됐던 ‘불안’은 주홍빛 폭탄 머리에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다듬어졌다. 제작에 참여한 심리학자 리사 다무르는 “불안은 인간에게 필요한 방어 감정으로, 긴장을 유지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비합리적인 불안은 위협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때 나타난다”고 했다.
한국인의 머릿속을 형상화한다면 역시나 ‘불안’이 조종간을 잡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종종거리는 ‘불안’을 보며 “나를 보는 것 같았다”는 관객평이 잇따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불안 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7년 약 65만명에서 2021년 약 86만명으로 32.3% 늘었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사회적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대인 관계에 대한 불안이 특히 높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문화에 경쟁으로 인한 압박까지 심해지면서 젊은 세대의 불안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외신에서는 ‘인사이드 아웃2′가 전 세대를 아우르며 코로나 이후 극장에서 멀어졌던 가족 관객을 불러 모았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도 3인 이상 동반 관람 비율이 27.1%로 동시기 개봉한 한국 영화들(15% 내외)에 비해 높은 편이다. 10대 자녀와 함께 관람한 40대 부모가 많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서지명 CGV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사회적으로도 불안 심리가 커진 가운데, MBTI 등 내면에 대한 관심이 높은 분위기와 맞물려 흥행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고 했다.
침체에 빠져 있던 픽사는 벼랑 끝에서 부활했다. 픽사 애니메이션이 매출 10억달러를 돌파한 건 ‘토이 스토리4′ 이후 5년 만. 피트 닥터는 ‘인사이드 아웃2′ 개봉 전 “만약 이 영화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업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했었다.
‘인사이드 아웃2′는 픽사의 사활을 건 작품이었다. 보통 영화에 60~70명의 애니메이터가 참여하는 반면, ‘인사이드 아웃2′엔 150명 이상이 투입됐다. 제작비도 2억달러로 대규모 예산을 투자했다. ‘루카’ ’엘리멘탈’ 등 전작들이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엔 더 많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성에 집중했다. 성공에 힘입어 픽사는 내년 초 라일리의 꿈 제작소를 그린 스핀오프(파생작)도 디즈니+ OTT로 공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