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여성이 높은 다리 끝에 매달려 있다. 밑은 웅덩이. 두 손을 놓으면 추락이다. 안간힘을 쓰고 버티는 모습이 안타까운 이 사진 제목은 ‘높이 재기’. 이예은(30) 작가는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작업을 지속하는 동료 작가들 이야기가 담긴 작업”이라고 했다. “많은 작가가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이나 편의점 일을 합니다. 하지만 만나서 ‘요즘 뭐 하고 있어?’ 물어보면, 다들 ‘무슨 작업 하고 있어’라고 답해요. 변변찮은 직업 하나 없이 일용직 일을 하면서 작업해 보겠다는 우리 모습이 마치 맨몸으로 깊이를 재고 있는 것 같아서 시작한 ‘무모’ 연작입니다.”
시대를 잠식한 불안이 전시장에도 스며들었다. 서울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 기획전 ‘불안 해방 일지’는 우리 일상에 파고든 불안이라는 감정에 주목한다. 1981년생부터 1994년생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를 경험한 청년 세대 작가 9명이 내면의 불안이나 사회적 불안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34점을 선보인다. 최근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에서 주인공 라일리를 조종하는 ‘불안이’가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은 것처럼, 청년 작가들의 불안과 고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목적지에 착륙하지 않고 비행 경험만 제공했던 관광 상품을 담은 영상 ‘무착륙 비행’ 등 사회 구조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다룬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양유연 작가의 ‘휘광’은 눈동자와 얼굴 일부에 빛을 집중해 인물의 불안한 감정을 극대화했다. 미술관은 “단순히 불안에 잠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밝게 환기하고 또 일상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들”이라고 했다. 11월 23일까지. 성인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