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강남 비-사이드’의 주연 배우 조우진(왼쪽)과 지창욱. /디즈니+

지난 3일 밤 부산 해운대구의 한 영화관.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강남 비-사이드’ 상영이 끝나자 객석에서 큰 박수가 나왔다. 공개 전인 드라마의 1~3화를 영화제에서 미리 선보인 자리. “끝날 때까지 영화인 줄 알았다. 사건 해결이 왜 안 나나 싶었다”는 관객도 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한국 OTT 드라마(시리즈)들이 영화 못지않은 완성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영화인들이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확장된 흐름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온 스크린’ 부문에 초청하고 있다. 올해 부산에 온 작품은 ‘지옥’ 시즌 2(넷플릭스)와 ‘강남 비-사이드’(디즈니+), ‘좋거나 나쁜 동재’(티빙). 10~11월 공개를 앞둔 기대작들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극단의 사상들이 만드는 지옥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만든 ‘지옥’ 시즌 1(2021)은 크리처(괴물)라는 장르로 대중적 성공을 거뒀던 드라마다. 깡패 같은 괴물들이 인간에게 죽을 날을 고지한 뒤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벌어지고, 이것이 ‘신의 심판’이라는 주장이 득세하며 벌어지는 사회 혼란상을 그렸다. 신생아를 지키는 부모의 이야기로 극적 몰입감을 높였던 시즌 1과 달리, 이번 시즌 2는 대중성에선 반 발짝 정도 멀어졌다. 현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여러 세력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내용이 방대해졌다. 하지만 이 세계관을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심화된 다음 장을 펼치는 재미를 줄 만했다.

‘지옥’ 시즌 2의 김성철. /넷플릭스

관객들과 만나는 ‘오픈 토크’에서 연 감독은 “이 작품 속 재난은 ‘물리적 재난’이 아닌 ‘사상적 재난’이다. 시즌 2는 이에 대처하는 여러 비범한 사상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라며 “애초에 만화로 시작한 이야기라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작품으로 기획했다면 절대 나오지 못했을,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주인공 ‘정진수’ 역을 새로 맡은 배우 김성철과, 김현주의 차량 액션신, 새로 합류한 문소리의 역할도 시청 포인트다.

◇익숙한 소재로 최대치의 매력

반면에 영화 ‘돈’의 박누리 감독이 만든 ‘강남 비-사이드’는 액션과 감성이 적절히 섞인 몰입감 높은 재미를 전달했다. 익숙한 소재가 주는 기시감을 캐릭터의 매력으로 지웠다. 마약 남용, 여성 유린, 경찰 비리 등 강남의 어두운 ‘B면’(이면)이란 소재는 기존 영화·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졌다. 하지만 형사(배우 조우진)와 포주(지창욱), ‘클럽 에이스’(김형서)의 캐릭터가 조금씩 새롭고 조합이 좋다. 몸집을 키워 무게감을 더한 조우진과, 퇴폐적인 얼굴의 지창욱, 잔인함이 강조되지 않은 화려한 군무 같은 액션도 돋보인다. 액션에 강한 제작사 사나이픽처스가 ‘최악의 악’에 이어 내놓은 드라마. 박 감독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인물들의 입장이 바뀌면서 공조하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는 모습을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한국판 ‘로키’도 가능했다

직관적인 재미로는 ‘좋거나 나쁜 동재’가 앞섰다. 객석에서 여러 차례 웃음이 터졌다. 인기 수사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 1(2017)과 시즌 2(2020)에서 얄미운 검사였던 ‘서동재’ 를 내세운 번외편 드라마다. 국내에선 이례적인 시도다. 마블 영화 속 깐족이 캐릭터 ‘로키’가 드라마로 나온 것처럼, 한국에서도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에서 매력적인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으나 늘 이류였던, 뻔뻔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한 동재가 거대한 악을 만나 점차 각성할 전망이다. 동재 역의 배우 이준혁은 “동재를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아 ‘다들 동재처럼 살고 있나, 그래서 와닿는 게 있나’ 생각하기도 했다”며 “동재를 놀리기도 공감하기도 하며 편안히 즐겨달라”고 했다.

‘좋거나 나쁜 동재’의 이준혁. /티빙

이번 영화제에선 OTT의 존재감이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넷플릭스 영화가 개막작이었을 뿐 아니라, OTT 드라마 제작진·배우가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 ‘오픈 토크’ 행사도 만석 상태에서 열띤 대화가 오갔다. ‘좋거나 나쁜 동재’에 참여한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는 “드라마로 부산에 와 관객들을 만나는 경험이 신기하다”고 했다. 영화감독·작가 등 창작자의 선택지가 드라마까지 확장되며 국내 드라마의 다양성도 깊어지는 추세다.

부산=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