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오즈의 마법사’ 외전(外傳)이 원작이라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국내에 상륙했다. 뮤지컬 평론가 대부분이 “망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 관객은 ‘오즈의 마법사’에도 친숙하지 않은데, ‘오즈의 마법사’의 외전이라니 잘될 리가 없다고 했다. 설왕설래 속에 개막한 뮤지컬 ‘위키드’는 평론가들의 예측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VIP석이 16만원으로 당시 최고가 티켓이었음에도 유료 관객 점유율 90%를 넘어서며 그해 최고 뮤지컬에 등극했다. 두 주인공의 설득력 있고 보편적인 성장 스토리, 감각적이고 호소력 넘치는 뮤지컬 넘버가 전 연령대 관객을 사로잡았다.
브로드웨이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인 ‘위키드’가 영화로 옮겨져 20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 국내에서도 보란 듯 성공한 뮤지컬 ‘위키드’의 명성 덕분인지 영화에도 기대가 쏠린다. 사전 예매 12만8000명(19일 현재)으로 예매율 1위다. 글로벌 누적 매출 50억달러(약 7조원)를 거둔 블록버스터 뮤지컬이 원작이니 비교를 피할 수 없다. 원작 뮤지컬을 여러 버전으로 30번 관람한 기자가 비교해 관람했다.
◇뮤지컬 억지 재해석 안 하고 충실히 옮겨 성공
결론부터 말해, 영화 ‘위키드’는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데 성공했다. 뮤지컬이 스크린에서 꿀 수 있는 가장 화려한 꿈을 보여준다. 일찍이 완성도가 인정된 원작 뮤지컬을 어설프게 재해석하려 하지 않고 충실히 보여준 선택이 주효했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두 마녀의 알려지지 않았던 뒷얘기가 중심이다. 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외톨이 소녀 엘파바, 엘파바를 만나 성숙하는 금발 소녀 글린다의 우정을 따라간다. 여기에 출생의 비밀, 피할 수 없는 삼각관계 등 대중에게 친숙한 요소까지 곁들였다.
난도 높은 영화화 작업을 맡은 연출가는 존 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2018)으로 알려진 감독이다. ‘나쁜 마녀’ 엘파바 역은 토니상 여우주연상 수상자인 신시아 이리보, ‘착한 마녀’ 글린다 역은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가 맡았다. 영화는 커다란 스크린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프로덕션과 현란한 군무가 빼어나다. 수백만 송이 튤립을 심어서 꾸몄다는 먼치킨랜드는 뮤지컬에선 볼 수 없는 장관이다. 분홍으로 휘감은 글린다, 녹색으로 대표되는 엘파바의 대조되는 색감도 눈을 즐겁게 한다. 뮤지컬로는 불가능한 친절하고 세세한 설명으로 쉽게 관객을 끌어들인다.
아쉬움도 남는다. 특히 시종일관 목각인형처럼 뻣뻣한 아리아나 그란데는 과장된 사랑스러움으로 웃음을 불어넣는 글린다의 매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 반면 신시아 이리보는 아웃사이더 엘파바의 선하고 여리면서 당당한 면모로 극을 끌어나간다. 연출적인 상상력이 부족해보이는 부분도 있다. 엘파바가 마침내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는 희망에 부풀어 열창하는 ‘마법사와 나’(The Wizard and I)’의 배경이 황량한 누런 들판이라니, 드넓은 스크린이 삽시간에 휑해보인다.
◇‘관객 외면할라’ ‘파트1′ 숨기는 교묘한 마케팅
이번 ‘위키드’는 전체 이야기 중 절반만 보여주는 ‘파트 1′이다. 뮤지컬로 치면 1막만 보여준다. 관객 입장에선 이야기가 중간에 끊기니 만족감이 떨어진다. 보다마느니 ‘파트2′가 나오면 보겠다는 이들도 속출할 수 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배급사는 이번 위키드가 ‘파트1′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제목을 ‘위키드’로만 표기하며, 내년 개봉할 후반부 영화에만 ‘파트2′를 명기한다. 기자도 ‘파트1′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다가 영화 끝부분에 “2편으로 돌아온다”는 자막을 보고 매우 허탈했다.
영화 ‘위키드’의 만족도는 뮤지컬을 본 관객과 보지 않은 관객이 다소 갈릴 듯하다. 뮤지컬에서 2시간 30분 안에 충분히 풀어낸 내용을 영화에선 5시간 분량으로 늘리다 보니 뮤지컬 팬은 질질 끈다는 느낌을 받기 쉽다. 내달려서 불러야 할 노래에 중간중간 영화적 기교가 삽입돼 0.5배속으로 느껴진다. 단, 영화로 처음 ‘위키드’를 본 관객이라면 다를 수 있다. 영화 ‘위키드: 파트2′는 내년 11월 개봉 예정이다.
☞위키드(Wicked)
미국 작가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판타지 소설(1995)에서 시작해 동명의 뮤지컬(2003)과 영화로 확장해 온 인기 작품.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악한(wicked) 서쪽 마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타자를 쉽게 악마화하는 인간의 편견과 선입견을 비판했다. 원작 소설의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뮤지컬에선 두 마녀의 우정과 성장 서사로 풀어내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