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겡끼데스까’의 순정이 30년이 지나서도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1995년 제작돼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영화 ‘러브레터’(감독 이와이 슌지)가 지난 1일 재개봉해 열흘 만에 6만 관객을 넘어섰다. 13일까지 관객은 6만7665명(오후 10시 현재). 개봉 첫날인 1일엔 좌석판매율(확보한 좌석 대비 실제 관객 비율)이 전체 영화 중 1위(42%)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러브레터’ 재개봉은 이번이 9번째인 데다 멀티플렉스 중 메가박스에서만 단독으로 개봉했다는 점에서 예상을 뛰어넘은 반응이다. 배급사 워터홀컴퍼니의 주현(43) 대표는 13일 본지 통화에서 “3만명만 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배 이상 관객이 몰려 저희도 놀랐다”고 말했다.
‘러브레터’의 일본 개봉은 1995년이나 국내 첫 개봉은 1998년 일본 문화 개방 이후인 1999년 11월이었다. 정식 개봉 전에도 이미 ‘불법 비디오 300만장’ 설이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최승호(49) 워터홀컴퍼니 이사는 90년대 비디오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다 “이 테이프 좀 복사해 달라”며 손님이 건넨 ‘러브레터’ 비디오를 보고 단박에 빠져들었다. 최 이사는 “그 무렵엔 대학가 동아리실, 분식집과 카레집에서도 ‘러브레터’ 상영회가 열렸다”며 “일본 영화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아 대여점에서도 내내 틀어놓고 볼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1999년 11월 21일 일요일에 관람한 ‘러브레터’ 티켓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첫 개봉 시기는 현재의 영화진흥위원회 전산망이 구축되기 전이었다. 정확한 관객 집계는 어렵지만, 서울 115만명, 전국 300만명쯤으로 추산된다. 영화 ‘타이타닉’(1998)이 약 197만명(서울 기준)으로 최고 흥행작에 꼽히던 시절에 로맨스 영화가 불러들인 관객으로는 놀랄 만한 성적이었다.
올해 재개봉 흥행의 가장 큰 힘은 비디오테이프 세대와 유튜브 세대를 모두 빠져들게 하는 작품성이다. 특히 ‘오겡끼데스까’를 쇼츠나 밈으로만 알고 있는 1020 세대가 온전한 작품으로 감상하기 위해 극장을 많이 찾는다. 메가박스 관객 데이터에 따르면, 최다 관람층은 20대(36%)로, ‘러브레터’ 세대인 40대(17%)의 두 배가 넘는다. 1020 세대가 46%로 절반에 가깝다. 지난달 숨진 주연 배우 나카야마 미호를 추억하는 팬들도 많다. 메가박스 측은 “추모 분위기도 재개봉 인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굿즈 수집에 열성인 팬층에 맞춤한 배급사와 메가박스 콘텐츠팀의 기획력도 한몫했다. 흰 커튼 뒤에서 책을 읽는 소년 이쓰키의 모습이 담긴 도서 카드, 자전거를 타고 따라와 소녀 이쓰키에게 봉투를 씌워주고 달아나던 소년의 모습이 새겨진 배지 등 특별 제작한 굿즈 10종으로 관객을 끌었다. 배급사의 소셜미디어에는 “이름만 알다가 이제 봤는데 감명 깊었다” “이 겨울에 감동이 따뜻하게 마음을 데워준다”는 관객평이 올라왔다.
이번 30주년판은 첫 개봉 때처럼 세로 자막을 넣고 일부 오역도 바로잡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이 아파서 이 편지는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이쓰키의 대사 중 ‘가슴이 아파서’로 오역됐던 ‘てれくさくて’를 정확한 뜻인 ‘부끄러워서’로 고쳤다. 주 대표는 “기존 자막이 오역이라 해도 가슴 아픈 멜로의 결말로 느껴져 선호한다는 분도 있었다”며 “그래도 원작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이 좋은 자막이라는 생각에 정확한 번역을 살렸다”고 말했다.
[’러브레터’ 뒷얘기]
―엔딩의 도서 카드에 그려진 소녀 이쓰키의 얼굴은 감독 이와이 슌지가 직접 그렸다.
―’오겡끼데스까’를 외치는 히로코의 뒷모습은 나카야마 미호가 아니라 촬영 스태프다.
―제니바코역 인근의 이쓰키 집은 2007년 화재로 전소돼 대문과 담장만 남아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 ‘새콤달콤 캐치! 티니핑’에서도 눈꽃핑을 찾는 주인공이 ‘오겡끼데스까’를 패러디했다.
☞러브레터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62)가 본인의 동명 소설(1994)을 바탕으로 쓰고 연출해 1995년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지난해 12월 사망한 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쓰키의 1인 2역을 맡았다. 국내 개봉한 일본 영화 중 가장 인지도 높은 작품으로, 뮤지컬(2014)로도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