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 마스트미디어

비장애와 장애 연주자는 흔히 올림픽과 패럴림픽처럼 활동 무대와 반경이 다르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일본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쓰지이 노부유키(辻井伸行·36)는 그런 편견에 도전하는 연주자다. 2009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 공동 1위에 오르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선우예권·임윤찬 같은 우승자들을 배출한 그 대회다. 3월 1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내한 독주회를 앞둔 그는 22일 영상 인터뷰에서 “지난해 스위스(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임윤찬과 만났는데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고 기억했다.

선천적 소안구증으로 태어날 적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살 때부터 어머니가 들려준 노래들을 듣고 장난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일곱 살에는 일본 시각장애 학생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피아노를 칠 때 가장 즐겁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음악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까…”라고 답했다. 작곡가로도 활동하는 그는 미 뉴욕 카네기홀 연주회 당시 눈물을 흘리면서 자작곡 ‘동일본 대지진 희생자를 위한 비가(悲歌)’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당시 연주 영상은 4000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는 “보통 연주 도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없는데, 카네기홀 데뷔 연주회라서 여러 복합적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신곡을 익힐 때 아무래도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레퍼토리를 넓히는 그만의 비결이 있다. “왼손과 오른손으로 따로 녹음한 음원을 들으면서 곡을 익힌다”고 했다. 이번 한국 독주회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 쇼팽의 야상곡 두 곡과 피아노 소나타 3번 등을 들려준다. 그는 “쇼팽은 섬세하고 우아하며 때로는 신경질적이지만 친절함도 지니고 있다. 내게는 피아노를 시작할 수 있었던 ‘원점(元點)’과도 같은 작곡가”라고 했다. 실제로 고교생 때인 2005년 쇼팽 콩쿠르에 참가해서 준결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그는 조성진 등이 소속한 세계 굴지의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쓰지이는 “어렸을 적부터 들었고 동경하던 아티스트들이 많은 음반사라서 영광이고 기쁨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의 여제’로 불리는 마르타 아르헤리치(83). “지난해에도 연주회에 찾아갔는데 80대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완벽한 테크닉과 표현력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아직 음악 욕심도 많다. “언젠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연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음악 외에 좋아하는 건 산책과 먹는 것. 한국 음식 중에서는 삼겹살을 좋아한다. 혹시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초밥을 좋아하니 초밥 장인이 됐을 것 같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