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상, '호랑이'.조선 18세기, 종이에 먹. /국립중앙박물관

바다 위 웅장하게 떠오르는 붉은 해 앞의 매, 눈빛이 형형한 용맹스러운 호랑이···. 설날 세배를 마치고 상서로운 그림을 보러 가면 어떨까.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 서화실에 새 그림 26건을 내놓았다.

새해를 맞아 조선시대 새해 송축용(頌祝用) 그림인 세화(歲畫)를 서화3실에서 선보인다. 세화는 연말·연초에 궁궐 안팎의 문과 창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그림으로, 주로 상서로운 주제를 담았다. 이번 전시에선 호랑이, 신선, 매 등이 그려진 작품을 볼 수 있다.

정홍래, '해돋이 앞의 매'. 조선 1791년, 종이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특히 정홍래(1720~?)의 작품 ‘해돋이 앞의 매’가 눈에 띈다. 바다 위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암석 위에 앉아있는 매를 그렸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바다 물결이 생동감을 더하고, 그 뒤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듯 붉은 해가 웅장하게 떠오르고 있다. 박물관은 “바다 위의 매를 그린 도상은 동아시아 전반에서 유행했으나, 해돋이 장면이 추가된 것은 조선만의 독창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매와 호랑이는 새해에 신하들에게 하사된 세화의 대표적인 소재였다. 매는 나쁜 기운과 간사한 신하를 물리치는 상징으로 여겨져 조선시대 내내 즐겨 그려졌다. 호랑이는 궁중뿐 아니라 민간에서 그려진 민화에도 자주 등장했다. 호랑이가 악귀를 쫓아내고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작가 미상의 18세기 그림 ‘호랑이’는 걷던 방향을 급히 바꾼 것처럼 활처럼 등이 휘고 앞발은 교차해 걷는 모습이다. 눈빛이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강렬하고, 털은 가는 먹선으로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묘사한데다 부분적으로 흰털을 섞어 풍성함을 더했다.

강세황, '자화상'. 조선 1782년, 비단에 색. /국립중앙박물관

강세황(1713~1791)이 70세에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도 서화4실에 새로 전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구입한 작품이다. 옥색 도포를 입은 평상복 차림에 관복에만 쓰는 오사모(烏紗帽)를 착용했다. 평상복과 관복에 쓰는 오사모의 독특한 조합은 그림 위 자찬(自讚)에 적힌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몸은 조정에 있다”는 글귀와 연결된다. 현실과 내면적 이상의 모순을 평상복과 오사모의 조합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자화상과 함께 강세황의 다양한 화풍을 감상할 수 있도록 그가 그린 ‘난죽도’와 ‘피금정도’를 함께 전시했다.

작가 미상, '호렵도'. 조선 19세기 중반, 면에 색.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서화5실은 겨울 풍경과 사냥 장면을 주제로 꾸며졌다. 특히 해외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끝낸 미국 클리블랜드박물관 소장 19세기 중반 ‘호렵도(胡獵圖)’가 특별 공개됐다. 호렵도는 청나라 옷을 입고 변발한 만주인들이 사냥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중국에서 전래된 ‘수렵도’가 조선에서 변형된 것이다. 이 작품은 호랑이, 표범, 사슴, 토끼 등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는 장면을 담은 연폭(連幅) 병풍이다. 수입산으로 추정되는 면직물에 진한 채색으로 그렸고, 금니를 사용해서 화려함과 장식성을 높였다. 김명국(1600~1662 이후)의 ‘눈 속에 나귀 타고 떠나다’, 김수철(?~1862 이후)의 ‘매화에 둘러싸인 집’ 등이 함께 전시돼 조선시대 화가들이 표현한 겨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서화4·5실은 3월 23일까지, 서화3실은 4월 6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