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좋아하세요?” 최근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소설가 전지영(42)에게 첫 질문을 던지자 소설가는 살짝 놀라며 “좋아한다”고 했다. 하이스미스는 ‘리플리’ 시리즈로 유명한 서스펜스의 대가. “글이 안 써질 때 잃었던 리듬감을 찾기 위해 읽어요. 그 외에도 셜리 잭슨, 기리노 나쓰오 등 여성 장르 작가 작품을 찾아 봅니다.” ‘찝찝한 조짐이 우글거리는 쪽으로 독자를 데려다 놓는’(전기화 문학평론가) 전지영의 소설은 ‘불안’을 솜씨 좋게 다룬다. 어딘가 곪고 비뚤어진 위태로운 인물들, 계급을 나누는 서늘한 시선 등.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만난 전지영. 이곳에서 입주 작가로 머무르며 첫 책 마무리 작업을 했다. /박성원 기자

2023년 조선일보·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2관왕으로 화제를 일으킨 그가 첫 소설집 ‘타운하우스’(창비)를 냈다. 불안만큼 눈에 띄는 건 선명한 공간.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 같은 디테일이 돋보인다. 전지영은 “글을 쓸 때 항상 인물을 공간에 세워두고 머릿속에 그려본다”며 “나만 느낄 수 있는 냄새, 풍경, 쓰러져 가는 무엇, 사람의 흔적 등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에 살을 붙여 쓰기도 한다. 제주 타운하우스가 배경인 단편 ‘말의 눈’은 한 지인의 말에서 시작했다. ‘제가 타운하우스에 사는데요. 옆집에서 맥주를 많이 마시나 봐요. 바람이 많이 불어서 맥주 페트병이 항상 날아와요.’ “그분의 이야기를 막지 않았죠. 계속 들었죠(웃음).”

지인들 항의도 받았단다. “저 정말 친구 많이 잃었어요.”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쥐’는 J시 해군 관사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자기 의도와 다르게 관사를 비판적 뉘앙스로 쓰니까, 문자로 ‘네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소설을 쓰는 과정은 사람을 계속 잃고, 계속 외로워지는 과정 같아요.” 그래서 남편과는 합의를 봤다. “특히 저희 집에 있는 남자는 절대로 제 소설을 읽지 않기로 약속했어요.” 자유롭게 쓰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자 함이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 두 아들과는 추후 합의를 볼 예정.

서울 평창동을 연상케 하는 가상의 고급 빌라촌 ‘청한동’을 소재로 한 단편 ‘언캐니밸리’와 ‘소리 소문 없이’는 계급 심리·서스펜스물 같다. 기사 딸린 차를 타고 청한동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아침·저녁 만원 마을버스에 몸을 싣는 그 집 일꾼들, 택시 타고 비밀리에 청한동 꼭대기로 향하는 이들이 한데 모인다. 청한동 이야기가 두 편으로 끝나 아쉬울 정도다. 소설가는 “연작소설로 써보면 좋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지금은 과거 어느 지역에서 벌어진 재난 사건을 다룬 장편소설 초고를 마무리 중”이라고 했다. 올해 출간이 목표다.

불혹에 등단한 작가는 이력이 독특하다. 예고를 나와 피아노 전공으로 이화여대 기악과를 다니다 중퇴했다. 한예종 예술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결혼 후 남편 직장을 따라 대구로 내려가 두 아들을 키웠다. 본격적으로 신춘문예에 투고한 건 5년 정도. 2022년 연말 한국일보 전화를 먼저 받고 기뻐하다가, 곧이어 조선일보 전화를 받고 “평생 써야 할 운을 다 끌어다가 여기다 부으면 내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겁이 났다”며 웃었다. 습작 시절엔 두 아이를 키즈 카페에 풀어놓고 두 시간여 소설을 쓰는 묘수(?)를 썼다. 그는 “마음속에 풀어내지 못하는, 알 수 없는 감정들로 터질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소설을 읽고 쓸 때는 그런 감정이 없어져요. 제가 선택한 게 소설이라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