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4화의 한 장면. 주인공 백강혁(주지훈)이 그동안 외상외과를 무시했던 항문외과 과장 한유림(윤경호)의 딸이 외상으로 실려오자 “급히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원작자 한산이가 작가는 “미국은 1950년대부터 외상외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발전시켰지만, 우리는 아직 역사가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넷플릭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응급실에 도착한 앰뷸런스, 피투성이 환자를 옮기는 응급구조사들, 고성과 비명이 오가는 응급실 속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 병원 응급실은 생사를 오가는 극한의 현장이다. 지난달 24일 공개된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는 이 치열한 공간을 무대로 펼쳐진다. 지난 5일 넷플릭스 비영어권 프로그램에서 글로벌 1위에 올랐다. ‘오징어게임2′는 비영어권 5위.

의학을 소재로 한 작품은 늘 관심을 끌어왔지만,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원작 웹소설을 쓴 한산이가(본명 이낙준·40)는 의사이자 작가라는 이력을 바탕으로 국내 의료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서면 인터뷰에서 그는 작품 집필의 배경, 의사로서 경험, 한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견해를 전했다. “중증외상센터라는 환경 자체가 극한의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이 환경에서 일하는 캐릭터는 ‘먼치킨(강력한 캐릭터)’으로 설정해도 설득력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작품 속 주인공 백강혁은 전장을 누비던 천재 외과 전문의. 유명무실한 중증외상팀을 되살리기 위해 부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환자를 살려내는 그의 능력은 현실 속 의료진이 처한 한계와 맞물린다. 이낙준 작가는 “의학 정보에 대한 접근 방법을 잘 알면 이를 현실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며 “의사로서 경험이 작품 전반에 녹아들었다”고 설명했다.

‘중증외상센터’는 실제 의료진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조명한다. 예산 부족과 인력난 속에서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중증외상팀의 모습을 전하며, 사람을 살릴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적 문제를 부각시켰다. 현실에서도 중증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외상 전문의를 포기하는 사례가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 작가는 “우리나라가 암, 심혈관, 뇌혈관 질환 치료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외상이나 산부인과, 소아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미국은 1950년대부터 외상외과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발전시켜 왔지만, 우리는 아직 역사가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빠르게 따라잡기를 바란다”고 했다.

웹소설을 기반으로 한 웹툰과 드라마의 성공에 대해 원작자로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더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작품이 되었다”며 “연출과 연기가 합을 이루면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고, 원작을 초월한 작품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원작이 가진 서사를 영상화하며 새로운 장면이 추가된 점에 대해 “드라마를 보면서 원작에서 미처 살리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연출한 것을 보고 감탄했다”며 연출진과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넷플릭스 방영 이후 해외 팬들의 반응에 대해서도 “영어를 잘 못해서 해외 반응을 자주 보지는 않지만, ‘대단히 새로운 스타일의 의학 드라마’라는 평가를 들었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의료 드라마가 흔한 해외시장에서도 ‘중증외상센터’가 흥행할 수 있던 이유로는 병원 내 권력 싸움이나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응급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 원작자 한산이가 작가./작가컴퍼니

의사와 작가라는 두 직업을 병행하면서 “시간이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출근도 일찍 하고, 식사도 빨리 마치고, 남는 자투리 시간에 글을 썼다”며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현실적인 의료 시스템을 조명하는 작품을 집필하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의료 현실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프리퀄(전작의 앞선 이야기) 작품인 ‘중증외상센터: 외과의사 백강혁’을 연재하며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성적이 좋다면 주인공 백강혁이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서 사설 군사 기업(PMC) 소속으로 일하며 용병들을 치료했던 시기까지 쓸 수 있을 것 같다”며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끝나면 법의학 작품과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작품도 써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디지털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의료 대란’ 등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작품 속 의료진의 헌신과 현실 속 의사들의 노력이 연결되기를 바란다”며 “의료인에 대한 호감이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작품을 통해 의료진이 처한 현실을 조금 더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의료진을 향한 신뢰가 높아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의료 시스템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산이가(이낙준·40)

이비인후과 전문의이자 의료 정보를 공유하는 130만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의 멤버. 현재는 전업 작가 및 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웹소설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필명 한산이가는 본관인 한산 이씨에서 유래했다. 2018년 공군 군의관 시절에 쓴 웹소설 ‘군의관, 이계가다’로 데뷔했다. ‘열혈닥터, 명의를 향해!’ ‘의술의 탑’ ‘닥터, 조선가다’ ‘의느님을 믿습니까’ ‘A.I 닥터’ 등 현실 의료 시스템과 판타지를 섞은 작품을 다수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