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16번째 레터영화 ‘벌집의 정령’입니다. 캡틴 아메리카와 미키17으로 시끄러운 이때, 조용히 개봉해 꿋꿋이 버티고 있는 이 영화를 꼭 추천해드리고 싶어서 레터로 보내봅니다. 여러분이 만약 영화감독이시라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알려주는 영화를 만든다면, 그런데 임금님이라는 말도, 귀나 당나귀도 언급하면 안 된다면, 어떻게 작품을 만드실 건가요. 남몰래 외칠 대나무숲마저 모두 베어져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에 대한 예술적 응답을 이 영화 ‘벌집의 정령’이 보여줍니다. 1973년 스페인 영환데 50년이 지나 이번에 국내에 처음으로 개봉했어요. 제 추천이 미덥지 않으시다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추천은 어떠신가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벌집의 정령’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면 더 궁금해지시려나요. 어떤 영향이기에? 아래에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벌집의 정령'/엠엔엠인터내셔널

작년에 개봉한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기억하시나요. 영화를 찍다 갑자기 사라진 배우를 찾아나선 어느 감독의 이야기였죠. ‘그 영화 어때’ 100번째 레터에서 소개해드렸는데요, 혹시 영화를 안 보셨더라도 눈 감은 소녀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시적인 포스터는 떠오르실지도. 그 영화를 만든 스페인 감독 빅토르 에리세(85)의 데뷔작이 이 영화 ‘벌집의 정령’입니다. 가끔 그런 때 있지 않나요. 뭔지 모를 수수께끼 같은 영화를 보면서 잊고 있던 감각을 깨워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는. 그럴 때 보시기에 딱 좋은 영화입니다.

‘벌집의 정령’ 포스터(윗사진)는 보는 사람을 단번에 사로잡습니다. 저 눈망울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영화 주인공인 여섯살 꼬마 아나의 얼굴입니다. 먼저 한 가지. ‘벌집의 정령’은 잘못하면 졸릴 수 있습니다. 배경 지식을 모르고 보시면요. 그렇다고 엄청나게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고요, 간단한 스페인 역사 상식이면 됩니다. 짧은 배경을 숙지하신 후 꼬마 아나의 눈빛에 마음을 맡겨보세요. ‘이렇게도 영화를 만드는구나’ 감탄하실 대목이 나오게 된답니다.

영화 배경이 1940년 스페인 시골인데요,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프랑코 독재 정권이 국가를 장악한 시기죠. 스페인 내전은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좌파 공화파와 우파 군부가 맞붙은 전쟁이었는데, 우파 군부인 프랑코파가 승리하면서 시작된 독재가 프랑코가 사망한 1975년까지 계속됩니다. ‘벌집의 정령’ 개봉이 1973년. 끝무렵이라곤 해도 아직 프랑코가 살아있을 때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섯살 꼬마를 내세워 감독은 세상에 하고 싶던 말을 합니다. 직설적으로 내지를 수 없는 억압의 시대에 예술가가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은유의 절정을 보여준 거죠. 예를 들어, 제목의 ‘벌집’은 억압받던 스페인 독재 사회, ‘정령’은 핍박받다 사라진 스페인 사람들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순진무구한 아나를 통해 감독은 말합니다. 사라진 그들이지만 영혼은 살아있다, 포기하지 않는 한 희망이 있다, 잃어버린 자유 역시 찾을 수 있다, 이렇게요. 이 얘길 시적이고 은유적으로 하다 보니, 무방비 상태에서 모르고 보기 시작하시면 졸리실 수도 있는 거고요.

'벌집의 정령'/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가 시작되면 시골길로 마차가 달려옵니다. “영화가 온다, 저 박스들 좀 봐, 영화 릴이 한가득이야”라며 마을 아이들이 환호합니다. 시골마다 돌아다니며 영화를 틀어주는 행렬이었는데, 마차에서 내린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를 보여주겠다”며 마을회관에서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특별상영한다고 알려줍니다. 우리의 주인공 아나는 언니 이사벨과 함께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집에 돌아와 언니에게 묻습니다. 전 아나와 이사벨이 나눈 이날밤 대사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들어보세요.

“언니. 괴물이 왜 그 앨 죽였어? 사람들은 왜 괴물을 죽인거야?”

“괴물도 죽지 않았고 아이도 죽지 않았어. 영화는 다 가짜거든. 속임수야. 살아있는거 봤어. 마을 근처 내가 아는 곳에서.”

“그럼 유령이야?”

“아니 영혼이야. 영혼들은 몸이 없어. 그래서 죽일 수 없어. 서로 친구가 되면 언제든 얘길 나눌 수 있어. 눈을 감고 그를 불러봐. ‘나야, 아나.’”

아나는 ‘프랑켄슈타인’ 영화에서 소녀와 호수에 꽃을 띄우며 함께 놀던 다정한 프랑켄슈타인이 왜 죽었는지, 정말 죽긴 죽었는지 궁금해서 언니에게 물어봅니다. 언니는 “안 죽었다, 눈을 감고 부르면 된다”고 알려줍니다. 빅토르 에리세의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생각나시지 않나요. 제목부터가 그렇죠. 눈을 감으면 만나게 되는 진실한 영혼. 진정한 가치는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데뷔작에서부터 최신작까지 반백년간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를 지탱하는 굳건한 믿음인 것 같습니다. 흔히 거장이라고 불릴 정도의 예술가는 생애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기 마련인데, 에리세 감독에겐 우리의 마음 저 아래에 있는 불변하는 진실한 가치가 그게 아닐까, 그리고 그걸 영화로 보여주려고 긴 세월 애써온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네요.

아나의 집엔 벌집 모양 창문이 달려있고, 아나의 엄마는 누구에겐지 알 수 없는 편지를 씁니다. ‘수많은 상실과 수많은 슬픔을 목격했어. 삶을 온전하게 살아갈 능력은 그것들과 함께 사라졌어.’ 양봉을 하는 아나 아빠는 벌을 관찰하다 밤이면 글을 씁니다.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벌집의 끝없는 소요, 벌들의 광적인 소란. 벌들의 집요하나 하찮은 노동, 죽음이라는 최후의 휴식’을 언급하죠. 이또한 벌집으로 상징되는 스페인 사회와 거기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얘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꿀벌빛 노란 색조가 영화 전체에 깔리는데 영화 마지막, 창가에 서있는 아나를 비출 땐 푸른 빛이 감돕니다. 그때 아나가 눈을 감으며 친구를 불러내거든요. “나야, 아나” 하면서요.

'벌집의 정령'/엠엔엠인터내셔널

노랑과 파랑의 대조라. 어디서 많이 보신 것 같지 않으세요? 앞에서 말씀드린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인공 꼬마 하나의 대표 이미지색이 노랑과 파랑이죠. 하마구치 류스케는 본인이 가장 영향 받은 영화 중 하나로 ‘벌집의 정령’을 꼽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만들면서 정신적으로 참고했습니다”라고 말했는데요, 정신적으로도 물론이고 이미지적으로도 많이 참고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 중심에 소녀를 뒀기에 관객이 느끼는 감정적 울림과 동요도 두 영화가 동일하고요.

끝으로, 아시면 반가운 사실. 에리세 감독의 데뷔작인 ‘벌집의 정령’의 꼬마 아나가 최신작인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도 나왔답니다. 사라진 배우의 딸로 출연했죠. 전 못 알아봤는데요, 아래 사진 보이시나요. 제가 사진을 나란히 붙여봤어요. 50년 세월이 한 배우를 스쳐갔네요.

전 어떤 영화든 보는 이의 마음에 남는 뚜렷한 한가지가 있다면 허다한 해석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완성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벌집의 정령’이나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여러분이 보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게, 새롭게 해석이 가능하기에 명작이 아닐까 합니다. 영화를 쉽게 접근할 제 생각은 말씀드렸으니 이제 여러분이 보시고 여러분만의 해석을 만들어보세요. 보는 사람이 100명이면 해석도 100가지인 것이겠죠. ‘벌집의 정령’은 OTT에도 없으니 상영관을 찾아서 꼭 한 번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아나 토렌트. '벌집의 정령'과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