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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김선욱(37)은 “태어나서 가장 바쁜 두 달을 보내는 것 같다”며 웃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우선 22일부터 런던에 기반을 둔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영국·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벨기에에서 7차례 순회 연주를 갖는다. 그 사이에 다음 달 다섯 차례 내한 공연도 잡혀 있다.

지난해부터 예술 감독을 맡고 있는 경기 필하모닉과도 7~8일과 다음 달 모차르트의 후기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그 뒤에는 이스라엘로 곧바로 날아가서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는다.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면서 두 달간 18차례의 연주를 소화하는 강행군이다. 그는 “벼락치기보다는 오래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몸 상태와 체력까지 자연스럽게 ‘오늘도 무사히’의 심경이 된다”며 웃었다.

이 연주회들에는 재미난 공통점이 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직접 연주하면서 지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관객들이 앉은 객석에서 등을 돌린 채 뚜껑을 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치면서 연주가 없는 동안에는 시선이나 손짓으로 지휘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는 베토벤 협주곡 전곡(5곡)을 연주하고, 경기 필하모닉과도 모차르트 협주곡 26번을 연주한다. 지휘부터 피아노까지 무대 위의 ‘1인 2역’인 셈이다. 흔히 만능 음악인이나 ‘양수겸장(兩手兼將)’으로도 불리지만 그는 “실은 음악의 ‘1+1(원 플러스 원)’에 가깝다”며 웃었다. 악기 편성부터 작품 규모까지 모든 것이 확대되는 낭만주의 시기부터는 지휘자와 피아니스트가 분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돌아보면 10대 시절부터 그의 이력은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2006년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18세의 나이로 우승한 피아니스트 출신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영국 왕립 음악원에서는 피아노 대신에 지휘를 전공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다니엘 바렌보임부터 정명훈까지 지휘와 피아노를 겸하는 음악인들이 좋았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작곡가의 작품을 더 많이 연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경우에도 피아니스트로는 협주곡·실내악·소나타만 연주할 수 있지만 지휘봉을 잡으면 교향곡과 오페라, 종교곡까지 레퍼토리가 확장된다. 그는 “작곡가와 작품을 바라보는 시야도 조금은 넓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연주를 준비하는 리허설 과정에서 장점도 쏠쏠한 편이라고 했다. “지휘자는 직접 소리를 낼 수 없는 직업이기에 단원들을 믿고 기댈 수밖에 없지만, 피아노 앞에서는 얼마든지 표현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지휘와 피아노를 겸하는 순간부터 단원들과 ‘실내악’을 연주하거나 ‘직거래’를 하는 듯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베를린 필(지휘 키릴 페트렌코) 내한 공연에서도 협연자로 나선다. 그는 “베토벤 서거 200주기인 2027년에는 피아니스트로 돌아가서 작곡가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을 다시 연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