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불상입니다. 조심히 들어주세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닷새째 확산된 26일 새벽, 안동 봉정사 등 주요 사찰에선 긴급 유물 이송 작업이 펼쳐졌다. 보물급 불교 유산들이 무진동 차량에 실려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국가유산청은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 안동 봉정사와 영주 부석사 등 사찰 6곳의 유물 15건을 인근 박물관과 연구소 등으로 옮겼다”고 이날 밝혔다.
국보·보물만 8건을 보유한 안동 봉정사에선 전날 밤늦게까지 유물 포장 작업이 이뤄졌다. 국가유산청과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관계자들이 유물을 사수하기 위해 25일 밤 급히 출동했다. 목조관음보살좌상, 영산회 괘불도, 아미타설법도 등 보물 3점을 비롯해 ‘이동 가능한’ 불화·불상·동종 등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와 예천박물관으로 분산해 옮겼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산불이 봉정사 쪽으로 급속히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실무자들을 긴급 파견했다”며 “관계자 수십 명뿐 아니라 자원봉사자들까지 합심해 밤새 이운 작업을 벌였다”고 했다.
봉정사는 ‘한국의 건축 박물관’이라 불리는 고찰이다.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은 국보 극락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 목조건축물이다.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되는 대웅전은 팔작지붕 다포집의 웅장한 힘이 넘쳐 국보로 지정됐다. 봉정사(鳳停寺)는 ‘봉황이 머무른 곳’이란 뜻으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201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가 극락전을 둘러보고 범종을 타종했다.
임승경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장은 “전문가 여러 명이 불상에 솜포를 덧대 포장하고, 폭이 5m에 달하는 괘불도는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서 상자에 담았다”며 “5t 규모의 무진동 차량 1대를 이용해 새벽까지 고속도로를 달려 항온·항습 기능을 갖춘 연구소 수장고로 옮겼다”고 했다. 연구소에는 보물 3점을 포함해 유물 8건을 이송했고, 고승 진영과 비지정 문화유산들은 예천박물관으로 옮겼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대웅전 벽화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사찰 내부 성보관에 보관하기로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영주 부석사도 새벽까지 초비상이 걸렸다. 부석사에는 미술사학자 최순우가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에서 아름다움을 극찬한 무량수전 등 국보 5건과 삼층석탑, 당간지주 등 보물 7건이 있다. 보물 고려목판, 오불회 괘불탱을 소수박물관으로 이송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조사당 목조 의상대사좌상은 인근 된장 체험 단지로 옮겼다.
거센 불길을 피해 면사무소, 초등학교까지 ‘유물 대피소’가 됐다. 영덕 장륙사에선 불상과 불화 등 보물 3점이 영해면사무소로 긴급 이송됐고, 안동 선찰사에선 보물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인근 길안초등학교로 우선 옮겼다.
26일 오후 5시 기준, 국가유산 피해는 총 15건으로 집계됐다. 의성군의 ‘천년 고찰’ 고운사는 건물 30동 중 9동만 남기고 모두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보물로 지정된 조선 시대 건축물 연수전과 가운루는 형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탄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