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장(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무심코 놓치고 지나간 신간, 인터뷰에 담지 않은 후일담, 각종 취재기 등 이모저모. +α를 곁들여 봅니다.
지난달 14일 화제의 시인 고선경(28)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습니다.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투고한 시 ‘럭키슈퍼’로 등단, 이후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문학동네)로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죠.
이날 자리는 두 번째 시집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열림원) 출간을 겸한 인터뷰. 두 번째 시집 판매량도 눈에 띕니다. 3월 기준 시 분야 베스트셀러 교보문고 2위·알라딘 1위 등 높은 순위를 기록 중입니다.
판다 스티커를 붙인 헤드폰을 목에 두르고 나타난 시인. 젠지(Gen Z)의 기운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어떤 콘셉트냐”고 묻자 “전날 술 먹고 남의 집에서 자다 온 후줄근한 설정”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얘길 나누다 보니 설정이 아니더군요. 동네 한 바퀴 산책하듯 털레털레 편안하게 인터뷰를 하러 온 모습에 웃음이 났습니다.
한 시간 삼십여 분간 인터뷰와 잡담 사이의 대화를 나눈 듯한데, 그래서인지 이래저래 기사에 담지 않은 내용이 유독 많았던 인터뷰였습니다.
현재 전업 시인이지만, 여러 일자리를 거쳤다고 합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기도 했고, 그 전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거쳤다며 포차·카페·편의점·옷 가게·백화점·학교 근로 등 화려한 알바 경력을 줄줄이 읊었습니다.
시인은 “전주에 살다가 스무 살 때 대학에 입학하며 상경했다”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 때문에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선 ‘아르바이트생의 애환’이 느껴졌어요. 시 ‘알프스 산맥에서 중국집 차리기’가 특히요.
비록 잘린 알바생이지만, 얼음물 한잔 당당하게 얻어마시고, 사장님 어깨까지 두드려주는 여유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형도의 ‘빈집’을 패러디(‘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해 사장님을 ‘가게에 갇힌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발칙함이라니요.
직장인의 심금을 울리는 이 주종의 변증법엔 스무 살쯤 했던 젤라또 가게에서의 아르바이트 경험이 녹아들었다고 해요.
“테이크아웃만 하는 좁은 젤라또 가게였는데, 앞뒤로 커다란 냉동고가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요. 햇볕은 내리쬐는데, 그 사이에 제가 껴서, 이러다 열사병 걸리겠다…. 사실 제가 갇혀 있었던 건데 사장님을 가두고 싶더라고요. 너도 한 번 있어봐라….”
그는 “직장인이 갖는 여러 갈망이나 자본주의에서 느끼는 환멸 등을 잠깐이나마 체험했다”면서 이를 “맛보기 스푼” 또는 “체험판”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마치 젤라또 가게에서 맛보기로 한 스푼 주는 것처럼요.
두 번째 시집이 1년 3개월 만에 나온 건데요. 주변에선 ‘시집 너무 빨리 내는 거 위험하지 않겠어?’라는 반응이 많았답니다.
시인은 “오히려 너무 늦게 나오면 ‘도대체 뭘 들고 나올까’ 기대감이 높아지고, 그만큼 실망감이 비례해서 커질까 봐 무서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빨리 내고 늦게 내고는 중요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자”는 자세로 두 번째 시집 작업에 임했다고 해요.
첫 시집과 달리 밈이나 패러디를 대부분 덜어냈다고 했지만, 특유의 능청스러움은 여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능청스러움이 웃음을 유발하고, 읽는 이를 조금은 씩씩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입니다.
첫 시집에 수록된 화제의 시 ‘스트릿 문학 파이터’(아직 안 읽어보신 분은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의 후속편 같다고 느꼈는데요. ‘떨군 고개’도 ‘원래 스트레칭하려 했던 척 한 바퀴 돌린다’는 그 능청스러움이 제가 평소 좋아하는 짤방을 떠올리게 해 여러 번 다시 읽으며 힘을 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