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직전 마지막 자유여행은 교토였다. 아내에게 당부받은 게 있었다. 장인어른이 애용하시는 ‘동전 파스’를 꼭 사 오라는 것이었다. 파친코에서 여행 자금을 탕진하는 바람에 파스를 못 샀다는 무용담이 생겼으면 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애써 이웃 나라에서 파스를 사올 정도로 우리는 파스가 친숙하다. 동전 파스를 만든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대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서양인들에게는 꽤 낯설다는 걸 모르는 이가 많다. 서양인들은 근육통이 있거나, 몸살 기운이 있어도 우리가 흔히 파스라 부르는 패치제를 잘 쓰지 않는다. 영화에서 늘상 보는 노랗고 길쭉한 약통에서 뭔지 모를 알약을 한 알 꺼내 물도 없이 꿀꺽 삼킬 뿐이다. 이들에게 진통제란 먹는 약이지, 붙이는 약이 아니다. 대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게 됐을까.
첫째, 서양인은 동양인보다 체모가 많다. 파스는 접착력 강한 패치제를 몸에 붙여 약을 피부에 흡수시키고, 쓸모를 다한 패치는 몇 시간 뒤에 떼어내는 식으로 사용한다. 체모가 많은 서양인은 애초 붙이기가 어려울뿐더러 뗄 때도 왁싱에 준하는 고통을 느낄 수 있어 사용 경험이 썩 좋지 않다.
둘째, 애초에 서양에는 우리가 흔히 쓰는 것 같은 대형 파스 제품이 거의 없다. 서양에서 쓰는 패치제는 대부분 호르몬제나 마약성 진통제와 같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이라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것이 없다. 붙이고 싶어도 애초 그럴 제품이 없다.
체모의 불편함도, 의약품 구성의 차이도 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문화적 요인이다. 서구의 의료적 전통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고약(膏藥)이 없다. 동아시아에선 피부병이나 타박상에 두루 붙이는 각종 고약이 있었으니, 파스 같은 패치제도 이를 현대화한 형태로 이해돼 쉽게 수용된 것이다. 침 맞는 전통이 있으니, 주삿바늘에 대한 거부감이 적었던 것도 같은 이치다. 한껏 현대화된 양 뻐겨 대도, 우리는 여전히 전통의 여운 속에 살고 있다.
4월 일사일언은 박한슬씨를 포함해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에노모토 야스타카 ‘나만의 일본 미식 여행 일본어’ 저자, 박시영 2025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자, 이승하 시인이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