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가 날 때였을 거예요. 어머니가 제 잇몸에 시바스 리갈을 발라주셨다고 하더군요.”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는 꽤 흔한 일이지만, 지금의 글렌그란트 마스터 디스틸러 그렉 스테이블스에게 그건 어쩌면 위스키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이사이드 지역 키스(Keith)에서 자랐습니다. 매일 학교에 가기 위해 두 개의 증류소 사이를 지나야 했고, 공기 중에 감도는 곡물 냄새와 증류기의 스팀, 그 모든 것이 풍경처럼 익숙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 이미 시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18년 동안 글렌그란트의 살아 있는 전설, 데니스 말콤과 함께 일했습니다. 말콤의 곁에서 증류소 구석구석을 익혔고, 수천 개의 오크통을 함께 살피며 위스키를 배웠습니다. 말콤이 은퇴를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의 후임자가 누가 될지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렉 이름이 호명됐을 때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6일, 홍콩 어퍼하우스에서 열린 더 글렌그란트 65년 론칭 행사. 글렌그란트 65년이 공개되고 있다. /김지호 기자

그의 첫 공식 일정은 지난 26일, 홍콩 어퍼하우스에서 열린 더 글렌그란트 65년 런칭 행사였습니다. 1958년에 증류돼 65년간 단 하나의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된 제품으로, 총 151병. 도수는 55.5%. 이제는 그렉의 취임을 상징하는 제품이 됐습니다.

지난 26일, 홍콩 어퍼하우스에서 열린 더 글렌그란트 65년 런칭 행사. 글렌그란트 65년이 공개되고 있다. /김지호 기자

글렌그란트는 1840년에 설립된 스페이사이드의 대표적인 증류소입니다. 알코올이 증류기 내부를 더 높고 길게 통과하도록 설계됐고, 정류기(Purifier)를 통해 무거운 증기를 다시 아래로 되돌려 비교적 가볍고 섬세한 증류액을 만들어냅니다.

모든 공정은 증류소 내부에서 이루어지며, 23명의 소수 정예 팀이 증류, 숙성, 병입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합니다. 이런 집중력 있는 구조는 품질 유지에 가장 큰 장점이 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지금 그렉 스테이블스가 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더 글렌그란트 신임 마스터 디스틸러 그렉 스테이블스. /김지호 기자

-위스키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스페이사이드 키스(Keith)에서 자랐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가려면 항상 두 개의 증류소 사이를 지나야 했어요. 매일 아침, 증류소에서 나는 냄새를 맡으며 자란 거죠. 증류소의 소리, 움직임, 공기 중의 향. 그게 제 하루의 일부였죠. 당시에는 그냥 신기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 나도 저 안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고요.

-처음 마신 위스키 기억나시나요?

솔직히 정확한 나이는 기억 안 납니다. 다만 어릴 적 이가 날 때 어머니가 잇몸에 시바스 리갈을 발라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스코틀랜드에선 꽤 흔한 일이었죠. 어쩌면 그게 제 첫 위스키였을 수도 있겠네요. 진짜로 마신 건 성인이 된 후였지만요.

더 글렌그란트 65년. 나무로 제작한 케이스를 제거한 모습. /김지호 기자

-65년 숙성 위스키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병입 시점을 지금으로 정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더는 숙성이 이 위스키를 좋게 만들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1958년에 증류된 이 위스키는 65년 동안 단 하나의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되었습니다. 통의 밀폐 상태와 나무의 품질이 매우 뛰어났고, 그 덕분에 도수도 55.5%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검은 체리, 무화과, 스파이스가 중심이 되는 풍미는 글랜그란트 특유의 깨끗한 피니시와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정점에서 병입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숙성된 위스키는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시간이 지나면 향과 맛의 구성 요소가 바뀝니다. 초기 과수원 계열의 사과, 배 같은 향은 점차 줄고, 블랙베리, 건자두, 무화과 같은 더 짙고 농축된 과일 향으로 변해갑니다. 동시에 나무에서 우러나오는 바닐라 스파이스, 시가박스, 가죽 같은 노트가 부각됩니다. 풍미는 깊어졌지만, 글렌그란트의 정체성은 그대로 남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 만드는 원액도 65년 견딜 수 있다고 보시나요?

그렇습니다. 저희는 19세기 말 설계된 높은 증류기와 정류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증류 직후 생산되는 뉴 메이크 스피릿의 품질을 매일 확인하고 있습니다. 모든 오크통은 스피릿을 담기 전에 꼼꼼히 개별적으로 점검되며, 숙성 중인 위스키는 정기적으로 테이스팅 됩니다. 이런 관리 시스템이라면 장기 숙성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많은 위스키 애호가들은 정규 출시 제품보다 글렌그란트의 독립병입 위스키를 더 선호해요. 공식적인 싱글 캐스크나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이 없었던 이유.

2006년 캄파리 그룹이 증류소를 인수했을 때, 주력 제품은 5년 숙성 위스키였습니다. 10년과 16년은 극소량만 있었죠. 장기 숙성 재고가 부족했기 때문에 싱글 캐스크나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은 당시로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죠.

이후 21년, 25년, 30년 같은 제품이 출시되면서 선택지가 넓어졌습니다. 다양한 제품을 고려할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한 셈이죠. 실제로 최근에 방문자 센터 전용으로 캐스크 스트렝스 제품을 선보인 적도 있습니다.

-실험적인 오크통도 시도 중이신가요?

네. 물론입니다. 단, 핵심 스타일을 해치지 않은 범위 내에서입니다. 최근에는 셰리 오크통의 비중을 늘리고 있고, 다양한 오크통을 병용해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1년은 복숭아 콤포트 같은 달콤함이, 25년은 오렌지 껍질과 다크 초콜릿이, 30년은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풍미를 보여줍니다.

-일부에서는 글렌그란트의 캐릭터가 너무 깨끗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아함이 종종 ‘비어 있음’으로 오해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아함이 곧 개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글랜그란트는 직선적으로 강한 향이나 맛을 내기보다는, 천천히 스며드는 스타일입니다. 18년이나 21년을 마셔보시면 크리미한 피니시가 꽤 오래 남는 걸 느끼실 수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각인되는 맛이죠.

-마스터 디스틸러가 되면서 바꾸고 싶었던 건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증류소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올린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그 시스템을 유지하고, 팀과 함께 품질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글렌그란트는 현재 23명의 직원이 증류부터 병입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하고 있으며, 이 점이 품질 유지의 핵심입니다.

-앞으로의 글렌그란트는 정체성을 지키는 데 달려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경계를 넓히는 데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둘 다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재고가 없어서 할 수 없던 실험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었고, 팀도 경험이 쌓였습니다. 다만 어떤 실험이든 글랜그란트의 스타일을 손상시키면 안 됩니다. 이 점은 명확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마스터 디스틸러로서 가장 어렵거나 도전적인 점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생산뿐 아니라 지속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저희는 증류소의 탈탄소화를 진행 중이고, 물 소비량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도 도입하고 있습니다. 기술 변화가 빨라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이 일상입니다. 하루하루가 도전입니다.

더 글렌그란트 신임 마스터 디스틸러 그렉 스테이블스. 글랜그란트 65년을 시음하고 있는 모습. /김지호 기자

-글렌그란트 스타일에 개인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싶진 않으세요?

아니요. 저는 관리인입니다. 제 색을 드러내기보다는 브랜드가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 “그 시절 글렌그란트는 좋았지”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준비 잘해라. 쉽진 않을 거야(웃음). 하지만 결국엔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될 거고, 그 안에서 평생 배울 수 있을 거야. 실수해도 괜찮고, 답이 안 보이는 날도 있겠지만, 그 여정이 너를 결국 가장 깊은 자리에 데려다 줄 거야. 그러니까 계속 궁금해하고, 계속 물어봐. 그게 네 무기가 될 거야.

세상에 나쁜 위스키는 없다. 좋은 위스키와 더 좋은 위스키가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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