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요테가 울부짖고 있다. /Sonoma County Regional Park

죽음의 수용소 알카트라즈, 붉은 구조물의 금문교, 언덕을 질주하는 전차, 실리콘밸리의 관문,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중인 이정후 선수의 소속팀 자이언츠의 연고지. 이쯤되면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는 미국의 한 도시가 떠오를테죠.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가장 과감한 도시, 바로 샌프란시스코입니다. 관광지로도 이름난 샌프란시스코에 서울의 북촌처럼, 일본 도쿄의 아사쿠사처럼 도시의 역사를 오롯이 품은 명소가 있어요. 금문교 남단 아래 펼쳐진 군사 유적지이자 녹지공원인 ‘프레시디오(Presidio)’입니다.

샌프란시스코 프레시디오의 코요테. /Presidio

연중 외지에서 온 여행객들과, 이곳에서 조깅을 하거나 개와 산책을 하는 시민들로 북적이는 이곳에 해마다 이맘때면 나오는 출입 금지령이 올해도 내려졌습니다. 산책길 두 곳이 개와 개주인들에게 출입이 봉쇄된 거예요. 골프장·국립군인묘지·캠프장 등 프레시디오의 핵심 시설들을 잇는 주요 산책로가 대상입니다. 목줄을 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개 자체가 출입이 제한됩니다. 이 말은 개를 걸리러 온 주인들까지 발이 묶인다는 것이죠. 이 조치는 겨울이 저만치 다가와있을 10월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원주민 옐라무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에 미국이 건국하던 1776년 스페인군 요새 ‘프레시디오’의 역사가 본격 시작됩니다.

코요테가 수박을 훔쳐 먹으려는 모습. /National Park Service

이후 이곳은 멕시코를 거쳐 미국의 손에 넘어갔고, 남북전쟁부터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미군의 역사와 함께 하며 태평양 연안의 핵심 군사 요충지로 기능했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초일극 시대)가 도래하면서 빼어난 풍광도 자랑하는 프레시디오를 공원으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결국 1989년 미군이 철수를 선언했고, 이후 녹지화작업을 거쳐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지금의 공간이 완성됐고 대표적인 국립공원이 됐습니다. 시종일관 이곳의 역사에는 인간이 깊이 개돼있어요. 공원화 역시 인간의 삶을 윤택하려고 는게 주목적이죠.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공원 이용객의 자유로운 발걸음에 족쇄가 채워진 걸까요? 바로 이놈들을 위해섭니다. 아우우우~~~코요테요.

텍사스주 빅벤드 국립공원에서 차도를 건너는 코요테. /New York City

들개라기엔 사납고 늑대라기엔 7%쯤 부족해보이는 갯과의 맹수. 겨우내 진득하게 몸을 뒤엉켜 흘레붙은 놈들의 새끼치는 시즌이 시작됐으니 이에 맞춰 공간을 양보하자는 겁니다. 코요테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욕심이 강한 짐승입니다. 게다가 출산 직후에 아직 약하디 약한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본능 때문에 사나워지고 그만큼 위험해집니다. 코요테는 같은 갯과의 반려견들을 자신들의 영역과 가정을 해치려는 침입자로 간주하고 거칠고 사납게 덤벼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싸움이 붙을 경우 누가 이기고 질지, 아니 누가 죽이고 죽을지, 아니 누가 잡아먹고 누가 잡아먹힐지는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그 과정에서 개주인이 날벼락 같은 횡액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불상사를 사전에 막기 위해, 코요테의 순산과 순조로운 양육을 위해 그들의 눈에 거치적거리지 말자는 얘깁니다. 조금 적나라하게 말하면요.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코요테. /Long Beach

프레시디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근 한세기 넘게 이어져온 코요테의 인간 세상 정복 프로젝트가 비로소 목전에 다가옴을 보여주고 있는 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짐승의 인간세상 정복이라고요? 맞습니다. 가장 진화한 원숭이족(영장류) 인간은 이성과 지능이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기를 갖고, 이른바 만물의 영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 의한 지구정복이 완료됐다고 섣불리 단정하긴 이릅니다. 인간의 삶에 해가 된다고 판단해 박멸에 나섰지만, 박멸은커녕 인간 세상을 야금야금 파먹고 들어가 이제는 인간 공간을 본격적으로 정복해들어가는 짐승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주자가 바로 코요테예요. 알다시피 코요테는 비열함과 음흉함의 대명사처럼 여겨져왔죠.

미국 제2의 대도시 로스앤젤레스의 뒷골목에 어둠을 틈타 코요테가 이동하고 있다. /National Park Service

같은 사냥꾼인데도 늑대·퓨마·불곰 같은 거대한 풍채에서 오는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처럼 인식됐습니다. 가축을 노리고 사람에게도 해코지한다는 이유로 수백년동안 꾸준히 사냥돼왔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땅에서 300년 넘도록 펼쳐진 인간과 코요테의 전쟁은 이 전쟁의 최후의 승자가 궁극적으로 코요테가 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래의 터전인 산과 숲을 나온 코요테들이 공원·대도시·학교·주택가 등으로 터전을 넓히고 ‘도시민’으로 완벽하게 적응하기 시작어요. 그리하여 많은 지역 공동체들이 공존(coexist)이라는 그럴듯한 구실로 코요테족에게 사실상 백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프레시디오의 코요테들은 그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프레시디오는 코요테의 터전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에요.

텍사스주 알링턴의 주택가를 어슬렁거리며 걷고 있는 코요테. /Arlington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해서 18~19세기 급속도로 미국 곳곳에서 도시가 개발되면서 코요테를 비롯한 많은 짐승들이 터전을 잃고 자취를 감춘 인간에 의해 박멸된 것처럼 보였어요.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1925년에 도심에서 기록된 것을 마지막으로 코요테가 자취를 감췄죠. 하지만 화려한 컴백까지 시간은 80년이면 족했습니다. 코요테는 늑대보다 못생겼고, 곰보다 작으며, 퓨마보다 약합니다. 하지만 이들 맹수들이 가지지 못한 것이 있어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생존력입니다. 인간이 만든 도시의 구조물을 지형지물로 삼아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포착되더니 지금은 골프장에 들어와 사람 앞에서 태연하게 사슴을 공격하며 맹수 본능을 과시하고, 애지중지 길러온 반려견과 반려묘를 물어가 원기를 충전하죠.

포획된 코요테가 우리 안에서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Arlington

프레시디오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역사·녹지공간으로 재단장하는 작업이 완료됐을시점인 2002년, 코요테가 기다렸다는 듯 돌아왔습니다. 77년만의 귀환입니다. 코요테는 습성이 늑대와 비슷해 같은 구역에 터를 잡은 무리 중 가장 강하고 똘똘한 암수 한쌍이 이룬 이른바 ‘알파 커플’이 흘레붙고 새끼치는 권리를 절대적으로 행사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태어난 새끼가 자라서 독립하는 식으로 영역을 부풀리고 있어요. 방문객들이 코요테와 맞닥뜨렸을 때 취해야 할 가이드라인을 보면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좀 더 분명해집니다. 다음은 공원당국이 안내하는 ‘코요테가 자신을 향해 계속 접근할 경우 취해야 할 행동’입니다.

·몸을 최대한 크게 보이도록 하면서 낮고 깊게 위협적인 소리를 낼 것

·손을 크게 흔들면서 보이는 물건들을 던질 것

·시선을 피하지 말고 눈으로 계속 마주볼 것

·가까이 다가온다고 절대 뛰거나 등을 보이지 말 것

 이렇게 해야 할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명목상으로는 쥐를 잡아먹는 등 생태계 균형을 맞춰주는 조절자 역할을 하는 코요테를 생태계의 일원으로 공존을 꾀한다고 할 수도 있겠어요. 그러나 어쩌면 코요테는 아주 오래전부터 터잡아오다 다시 돌아온, 프레시디오의 산신(山神)일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도시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코요테의 출몰은 사실상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최근 코요테 관련 사건·사고의 추이를 보면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거예요. 코요테가 자신들의 본래 터전인 숲과 산 뿐만 아니라 침입해 들어온 도시 한복판에서, 반려묘·반려견도 아닌 사람을 습격하는 경우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는 겁니다.

캘리포니아 라팔마시가 코요테로부터 해코지 당하지 않는 법을 안내했다. /La Palma

최근 워싱턴주 벨뷰에서 벌어진 다섯건의 코요테 연쇄 공격 사건을 보면 최근의 공격 패턴이 드러납니다. 지난달 테라스에 앉아있던 여성에게 코요테가 접근해 다리를 물었습니다. 공포에 질린 여성이 가까스로 집안으로 피했지만 끝까지 쫓아오는 코요테에 몸서리치는 공포를 느꼈을 겁니다. 차고로 침입해 일하고 있던 남성의 다리를 무는 사건도 일어났어요. 문제는 코요테란 놈들이 아이들을 습격하는 사례가 부쩍 많이 보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교 근처에서 부모님이 데려가기를 기다리던 소녀가 코요테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등으로 멘 학교가방을 물고 질질 끌고 가려다 여의치 않자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코요테는 가족애가 강한 동물이다. 암수로 보이는 한쌍이 다정하게 밀착해있다. /Fountain Valley

역시 학교 버스를 기다리던 아이의 가방을 코요테가 물어 끌고 가려다 어른들이 쫓아내는 아찔한 순간까지 있었습니다. 실제 어린이가 물린 사례도 보고됐고요. 이런 코요테의 역정복이 어느 순간까지 진행이 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서 유해조수 구제라는 목적으로 엽사들이 코요테 수렵에 나서고 있지만, 과연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정복하기에는 거대해져버렸고, 공존하기에는 섬뜩한 동물 코요테, 과연 문명의 역사와 함께 해온 야생동물 생존열전의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도 미국 곳곳에서는 하늘을 찌르는 코요테들의 하울링(howling)이 계속됩니다. 아우우우~ 그 속뜻은 이렇지 않을까요? “크홧홧홧! 만물의 영장이라고? 개풀 뜯어먹는 소리에 지X이 사이드킥이로군!”

아메바부터 침팬지까지, 사람 빼고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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